10월 장외 대회전을 예고-두 김씨의 실세대화 촉구와 정국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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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정당의 개헌안 마련과정과 당정개편을 조용히 지켜보며 비교적 하한 속에 빠져있던 신민당이 9월에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가을정국에 대비한 일련의 움직임을 보이고있다.
국회개헌공청회의 TV중계방식을 놓고 『생중계를 않는 다면 헌특에 불참한다』고 신민당이 결정한 것과 함께 2일 김대중·김영삼씨는 9월중 전두환 대통령과의 「실세대화」를 또한 번 요구하고 그것이 성사되지 않으면 정권 타도록 투쟁노선을 바꾸겠다는 말까지 했다.
또 같은 날 신민당은 재야대표들과 만나 직선제 고수를 다짐했다.
이 같은 신민당과 두 김씨의 움직임을 보면 야권이 9월 들어 강경 선회를 하고있다는 인상이다.
야권의 이런 강경 선회는 여야의 대립 요인을 더욱 선명하고 강경하게 부각시켰다고 볼 수 있다.
의원내각제와 직선제의 대립을 더욱 요지부동으로 만들었고 생중계냐, 녹화중계냐로 맞붙어있는 TV중계방식에 있어서도 타협의 가능성을 더욱 어렵게 한 것이다.
9월중 실세 대화를 여권이 받아들일지도 의문이거니와 받아들인다 해도 직선제를 여권이 수용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보이는 만큼 두 김씨가 요구하는 대통령의「직선제 개헌 결단」은 대화를 통한 타협보다는 일방적인 통첩의 뜻이 강한 것 같다.
특히 이민우 총재와 두 김씨가 2일 재야인상들과의 회동에서 직선제 고수를 다짐하고, 직선제가 아닌 어떤 개헌타협도 않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야권내의 탄력성의 바탕은 더욱 좁아졌다고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신민당의 운신의 여지가 더 좁아졌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서로 방향을 달리하는 두 개의 개헌안이 쉽게 절충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짐작하면서도 타협을 위한 어느 정도의 과정은 거치고 나서야 붙더라도 붙지 않겠느냐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었지만 신민당의 강경자세로 미루어보면 이렇다 할 협상과정도 없이 또 한번 여야대결 국면을 맞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두 김씨의 성명을 보면 비록 「9월중 실세대화가 안되면」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기는 하나 제반 여건을 감안할 때 신민당이 10월중 장외에서의 대접전, 여야격돌을 향해 이미 항진을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개헌문제가 헌특 만으로서는 해결될 수 없으며 직선제 개헌을 위해서는 대통령의 긍정적 조치만이 필요하고, 난국 타개를 위해서는 전대통령과 이민우 총재·양 김씨 간의 4자 회담이 9월중 이루어져야 한다』는 성명내용의 본뜻은 명백하다.
고심 끝에 내각책임제를 당론으로 채택, 대대적인 장외홍보를 하고있는 민정당에 직선제를 받으라는 것은 항복하라는 뜻이며 정부가 김대중씨를 하루아침에 「기피인물」에서 대화상대로 대접하리라고는 야당자신들도 기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두 김씨가 하고 싶은 진짜 얘기는 아시안게임 때까지는 참아 주겠지만 10월에 가서는 대대적인 장외투쟁을 벌이겠다는 일방적 통첩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그러면 신민당은 왜 한달 후의 「정치전쟁」(김대중씨)을 서둘러 선전포고하는 것일까. 두 김씨를 포함한 신민당지도부는 국회 헌특차원에서 밀고 당기는 것으로 합의개헌이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므로 헌특에만 매달려 있다가는 자기들이 설정해 여야간에 합의한 9월말 시한까지 아무런 진전도 이루지 못할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신민당으로서는 9월말 시한을 앞두고 여당의 호응은 기대되지 않지만 강경 수준의 대여 촉구를 하고, 그 촉구가 예상대로 무위로 끝날 경우 아시안게임이 끝나는 10월부터는 다시 장외투쟁 등 대여공세를 재개하겠다는 수준을 잡고있는 것이다. 신민당의 이런 복안은 어차피 10월부터는 2학기 학원사태가 재연될 수밖에 없고, 개헌문제에 관한 여야협상도 강경·온건국면이 교차하는 험난한 우여곡절의 과정을 거쳐 10, 11월을 보낸 후 연말 가까이 돼야 가든 부든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김씨의 강경 요구는 10월 운신을 위한 전 단계 포석이라는 의미가 있는 셈이다.
또 한가지는 아시안게임이 끝나기 전에 실세대화를 촉구하는 것이 적기라는 판단도 있는 것 같다. 아시안게임이 끝날 때까지는 여권이 정국안정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만큼 이 기간에 압력을 가중시켜 가급적 소득을 얻어내자는 속셈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에 두 김씨가 내린 결론은 평소 김대중씨의 주장이 강하게 반영된 편이다. 김대중씨는 헌특을 통한 합의개헌은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공언해 왔으며 전 대통령의 결단만이 직선제 관철의 관건이라는 논리를 펴왔다.
아울러 정부·여당으로부터 그같은 양보(?)를 얻어내려면 궁극적으로는 민중의 힘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었다.
김대중씨는 심지어 『헌특은 헌특 무용론을 알리기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했고 9월중 실세대화가 안되면 아시안게임 후 정부·여당이 일방적인 개헌을 할 것이라고 말해왔다.
반면 김영삼씨는 법적으로나 현실적으로 개헌을 할 수 있는 곳은 국회뿐이며 합의개헌은 전 대통령의 힘이 있고 그것이 민주화폭으로 발휘될 때만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김대중씨의 반대를 무릅쓰고 헌특 구성을 주도했다.
그러나 김영삼씨로서도 9월말 1차 시한 후의 대책에 부심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러다 보니 닥쳐올 헌특의 공과문제에까지 대비해 강경 선회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유력하다. 또 헌특 분쇄론을 고수하고있는 재야를 의식해야 했으며, 재야와 비교해 신민당의 강점은 국회라는 평소 그의 소신을 밀고 나가기가 어렵게된 것 같다.
아뭏든 두 김씨는 개헌정국의 주도권은 장외 투쟁을 통해서만 확보될 수 있다는 국회 헌특 구성 이전의 정세 관으로 되돌아간 양상인데 이런 두 김씨의 견해가 계속 일관 될 것인지가 관심사다.
이 같은 현상은 합의개헌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한번 또는 그 이상 나타날 것으로 널리 예상돼 온 것이지만 당장 국회 헌특의 표류, 정국의 불안정성 등으로 구체화 할 것으로 보여 사태전개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전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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