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문의『바늘도막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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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재작년 9월, 한강변의 물난리와 북한의 물자를 우리측이 받아들인 사건은 많은 화재를 낳기도 했고 여러 작품의 소재로 등장하기도 했다.
북한에서 보낸 쌀에 돌이 많다, 옥양목은 무늬가 유치하고 질이 나쁘다, 북한에서 보낸 살과 남한쌀을 섞어 밥을 하면「통일밥」이 아니겠느냐는 등 별 이야기가 다 있었다.「통일밥」 이야기는 듣는 이에 따라서 오해도 있겠지만 통일에 대한 우리의 열망이 반영된 말이라고 해석하는 편이 무난하다.
이상문의 「바늘 도막 하나」(『한국문학』 8월호)는 화제 거리로 한참 떠올랐다가 지금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더냐 하는 정도로 기억의 저편으로 넘어간 이런 이야기들의 심층을 파헤쳐 분단시대의 우리들의 모습을 부각시킨 작품이다. 이 작품이 주목되는 이유는 남들은 다 잊었는데 그 일을 잊지 않고 있는 남다른 기억력 때문은 아니다. 소설가는 기억력 좋은 늙은 노파처럼 자신의 체험을 생생하게 전달할수 있어야 하지만, 그보다도 문제거리가 무엇인지를 파악해서자신의 경험이 미칠 수 없는 부분까지 문제 거리 속에 포함시킬 수 있어야 한다.
「바늘 도막 하나」가 돋보이는 까닭은 작가 자신의 미체험 부분을 문제 거리로 끌어올려 문제와 전모를 충분히 서술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줄거리는 그 바깥은 대단히 간단하나 속은 비교적 복잡하다. 실향민인 양아버지의 속사정을 아들 내외가 잘 모른다는 것이 이 작품의 바깥 줄거리다. 그러나 그 속을 살려보면 양부모와 아들의 기묘한 결합, 양어머니가 부쳐온 쌀에 바늘 도막이 들어간 사건, 밥을 먹다가 혹시 바늘도 막을 삼키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가족들, 양아버지인 김만식씨의 기이한 삶의 형태 등 복잡한 이야기가 얽혀있다.
이 작품의 절정은 양아버지 김만시씨가 바늘 도막이 들어간 쌀 대신에 자기가 가져온 별도의 쌀을 먹겠다는 장면이다. 아들 내외는 가족의 아픔을 같이 할 수 없다는 아버지의 태도에 분개하나 그 쌀이 북한에서 보내온 수재물자라는 것과 김만식씨가 수재물자인 옥양목을 이불 깔개 밑에 소중하게 간직한 것을 확인하고 충격을 받느라. 아들 내외는 실향민인 양아버지의 수재물자에 대한 특별한 애착을 너무나 몰랐던 것이다.
자가가 전달하려는 이러한 충격을 시시한 것으로 여기거나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쌀에 들어간 바늘 도막 하나 때문에 생병까지 앓는 섬세한 신경의 주인공이 정작 중요한 분단의 문제에 대해서 무감각하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바늘 도막 하나가 쌀자루 속에 빠진 일을 일생일대의 사건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우리들 자신이다.
이 작품은 입으로는 분단이니 통일이니 떠들지만 실제로 그 문제를「바늘 도막하나」보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현실을 우리의 눈앞에 펼쳐 보인다.
분단문제를 소설화함에 있어 섬세한 것에 너무 집착하면 형식은 새로와지나 문제의 전모를 파악하기 어렵다. 이 작품은 섬세함에 얼마간 치우쳐 있으나 부분도 잘 모르면서 전체를 다 안다고 강변하는 작품과 엄격하게 구별된다. 형식의 새로움과 주제적 깊이의 적절한 조절, 이것이 이 작품이 제기하는 과제다.<전영태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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