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희의 맛따라기] 셰프 40명과 사찰음식 산중 수련…’절밥’에 홀려 하산하기 싫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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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식사인 점심으로 긴 목로 상에 두 가지 밥과 14찬이 차려졌다. 기본상에 공용으로 3가지 찬이 더 있고, 국도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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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맛집이 아니라 맛을 만드는 사람들을 따라가봤다. 지난 주말(24~25) 요리 전문가를 대상으로 사찰음식 교육 프로그램이 장성 백양사 산내 비구니 암자인 천진암(암주 정관스님)에서 열렸다. 조계종 산하 한국불교문화사업단 사찰음식팀이 셰프들의 페이스북 커뮤니티 ‘힐링셰프’(대표 이산호 워커힐 호텔 조리팀 헤드셰프·36)를 초대했다. 스타급 셰프, 실무 수업 중인 예비셰프, 백전노장 요리교실 선생님 등 40명이 참가했다.

도착해서 첫 식사인 점심은 천진암에서 준비한 음식을 먹었다. 나머지 저녁-아침-점심 식사는 참가자들이 조를 나눠 정관스님의 지도와 조리법대로 음식을 만들어 모두 함께 먹는 순서로 진행했다. 그러다 보니 끼니마다 속세에서 맛보기 힘든 별식 10~20가지가 차려졌다. 중간에 사찰음식에 대한 이론수업 두 차례, 명상의 시간도 한 차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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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상차림을 배식 순서 끝에서 본 모습. 13찬(두 가지 찬을 한 곳에 담은 그릇이 두 개)과 두 가지 밥이 보인다.

사찰음식은 쉬운 말로 ‘절밥’이다. 나는 특별한 일이 없는 가을 주말엔 불자도 아니면서 한적한 절 주변을 떠도는 일이 종종 있다. 단풍 구경을 겸한 가을 산책이 구실이지만 실은 ‘절밥 거지’ 행각이다. 가장 좋아하는 절 음식은 된장국이다. 햇빛 충분히 받고 아무렇게나 자란 넝쿨 호박을 돌확으로 툭툭 깨트려 넣고 끓인 가을 무청된장국은 자다 생각해도 잠이 달아날 만큼 좋아한다.  천진암으로 가는 내 발걸음은 춤을 췄다. 부처님 가피(加被)가 있었는지 첫 식사에 바로 그 국이 한 솥 준비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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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점심 기본상에 공동 찬으로 고구마·단호박튀김, 들기름 빡빡장, 비트로 색을 낸 배추물김치가 차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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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점심의 국은 호박?시래기된장국이었다. 제대로 갖춘 사찰에 장맛이 없는 경우는 드물다. 된장국은 저절로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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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덜어 담아온 접시식사 차림. 14찬을 고루 담았다. 국과 기본 3찬은 따로 있다.

고불총림 백양사에서 템플스테이 중이던 유럽 셰프 한 명도 우연히 과정을 동행했다. 독일 베를린에서 ‘Kochu Karu’라는 한국·스페인 퓨전 음식점을 운영하는 호세 미란다 모리요(José Miranda Morillo·47). 그의 음식점은 2015·2016년 미슐랭 가이드 빕 그루망(BIB Gourmand: 합리적 가격으로 훌륭한 맛을 제공하는 식당 추천 표지)을 받았다. 한국인 부인 이빈(42)씨와 3년마다 한국을 찾는다는데 이번 행사를 ‘횡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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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음식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해 야단법석(野壇法席) 격인 임시 공양간에서 점심식사를 하는 ‘힐링셰프’ 동인들.

총림(叢林)이란 방장스님의 지도 아래 승려들의 참선수행 전문도량인 선원,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 계율 전문교육기관인 율원을 모두 갖춘 사찰을 말한다. 조계종에는 종법에 따라 8개 총림이 지정돼 있다. 고불총림 백양사는 일제강점기부터 1996년 총림이 될 때까지 대규모 불사를 거듭하고 사격(寺格)을 드높이기까지 절 살림이 넉넉한 적이 거의 없다. 그런 가운데서도 지역 민생을 돌보고 교육사업을 펼치느라 스님들 울력(사찰 공동노동)은 늘 고되고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는 청규(淸規)는 어느 절보다 엄격하다. 산내 암자인 천진암도 예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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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사로 들어가는 아기단풍 숲길엔 수백 년 묵은 갈참나무가 여러 그루 있다. 사진 오른쪽 큰 나무는 수령 700여년으로, 갈참나무로는 국내 최고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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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루 앞뒤로 백학봉과 그림자가 마주보고 있는 풍광은 백양사의 상징과 같은 명승이다.

1351년 고려 각진 국사가 창건한 천진암은 백양사 쌍계루에서 비자나무 숲길을 따라 동북쪽으로 약 500m 올라간 산속에 있다. 멧돼지가 무시로 출몰한다. 호남에서 처음 비구니 선원을 연(1996) 수행도량인데, 2014년 본사인 백양사가 조계종 ‘사찰음식 특화사찰’로 지정된 다음부터 그 핵심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천진암에 정관스님이 있기 때문이다. 천진암 풋내산사음식연구관장인 스님은 적문·선재·대안·법송 스님 등과 함께 사찰음식 분야의 큰스님이다. 사찰음식 특화사찰은 전국에 16곳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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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암에 자라는 수령 500년된 탱자나무는 올해도 실한 열매를 맺었다. 탱자를 수확하면 청을 내 음식 할 때 양념으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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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음식에 쓰는 천연양념들. 오신채와 동물성 음식을 쓰지 못하기 때문에 맛을 내는 양념 기술은 민간에 비해 더 다채롭다.

지난해 10월 뉴욕타임즈(NYT) 인터넷판에 ‘요리하는 철학자 정관 스님(Jeong Kwan, the Philosopher Chef)’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스님을 ‘세계에서 가장 진귀한(the most exquisite) 음식을 만드는 셰프, 세계 최고 반열에 오른 요리사’라고 소개했다. 이후 미국·유럽에서 많은 셰프들이 찾아왔다. 또 스님을 미국으로 초청해 맨해튼 최고 레스토랑 ‘르 버나댕(Le Bernadin)에서 시연회를 열고, 방송 요리프로그램에도 출연하면서 글로벌 명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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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와 요리 시연을 하는 정관스님과 경청하는 요리사들. 스페인계 독일인 셰프 호세의 모습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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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스님이 김치 양념 만드는 과정을 시연하자 참가한 셰프들은 받아 적거나 동영상을 촬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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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피가루가 들어간 갓김치(왼쪽)와 솎음배추김치 완성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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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스님 앞에서 도라지·오이무침을 만들고 있는 참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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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 채를 만들기 위해 과육 벗기는 작업을 하고 있는 스페인계 독일인 호세 셰프.

스님의 음식을 배우러 천진암에 간 ‘힐링셰프’ 동인 40명을 맞은 첫 식사의 차림은 두 가지 밥에 국과 17찬이었다. 긴 목로 상에 차려놓고 뷔페처럼 덜어 먹게 했다. 이름만으로도 음식이 상상이 되고, 만들고 싶은 의욕이 생길 것 같아 상세히 기록한다(상차림 사진의 순서대로).

▷감자·애호박 넣은 보리밥, 햅쌀밥 ▷초피 가루가 들어간 열무숙지(데친 열무김치) ▷양하·애호박볶음 ▷비름나물 ▷정통 인도카레와 강황을 반반 넣은 콩나물·토마토찜(스님도 이날 처음 해본 음식이라고) ▷들깨를 넣은 가지무침 ▷다섯 가지 버섯 초회 ▷3년 묵은 배추·갓 백김치찜 ▷곰취·산초열매장아찌 ▷3년 묵은 양하장아찌 ▷5년 묵은 무장아찌(1년 오미자청, 1년 된장에 담갔다가 꺼내 3년을 더 묵힘) 3년 묵은 두릅고추장장아찌 ▷단맛·신맛이 비단결 같으면서 균형이 꽉 잡힌 무생채 ▷추석 전에 따서 말려 뒀다 삶아서 덖은 토란 잎 묵나물(백양사는 토란 음식이 유명) ▷천진암이 자랑하는 맛의 들기름 빡빡장 ▷단호박·고구마튀김 ▷비트로 색을 낸 배추 물김치 ▷호박·시래기된장국 ▷디저트로 단호박식혜·과일·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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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를 마친 그릇은 평상에 늘어놓고 일광욕을 시킨다. 많은 사람이 식사를 할 때는 그릇장을 대신한다.

식사 후에는 정관스님의 강의·시연과 실습이 이어졌다.

스님은 “육신이 없어지면 마음도 없다. 몸과 마음이 함께 청정해야 생각과 행동도 맑다. 그걸 뒷받침하는 게 음식이다. 음식을 어떤 재료로 어떻게 만드냐는 건 삶이 있는 동안 계속되는 당대의 화두”라고 ‘설법’을 시작했다.

음식에 대한 스님의 사자후는 방죽 터지듯, 쏜살같은 말이 되어 경청하는 셰프들 사이를 날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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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스님이 가지된장구이 만드는 과정을 가르쳐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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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전을 부치고 있는 태국음식 전문점 ‘생어거스틴’의 김남성 조리이사.

“요즘 사람들 식재료를 모른다. 이 재료가 어떻게 해서 여기 왔는지 근본을 알아야 한다. 자연의 산물인 식재료의 근본을 안다 함은 우주 섭리 속에서 식재료를 파악하는 것이다. 24절기 제철 식재료의 근본 기운을 따라가야 업력(業力)이 쌓이는 음식이 나온다. 그런 음식이 에너지와 생각을 한 덩어리로 응집해 불덩어리처럼 일어나도록 수행의 근기와 동력을 뒷받침한다. 자연의 에너지를 음식으로 섭취하고 몸 안에 응집해 수행의 에너지로 삼는 것이다. 음식은 창조이고, 만드는 과정은 수행이다. 힘과 열정으로 음식을 하자. 그 음식을 나누는 것은 내 마음과 정신을 먹는 사람에게 나눠주는 거다. 보시하는 거다. 그가 맛있게 먹는 걸 즐겨라. 그러면 상대의 에너지가 나에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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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식사 후 명상과 다담의 시간. 묘운스님(서있는 사람)은 ‘나는 누구인가’를 답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묻고 또 물어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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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 좌선도 앞에서 설법하는 천진암 주지 정관스님.

결론은 이렇게 맺었다.

“식재료 자체의 맛을 끌어내야 좋은 음식이다. 재료를 파악하고, 알아야 할 수 있다. 재료 모르고 만든 음식은 쓰레기나 같다. 기본 양념으로 최대한 맛을 끌어내는 게 사찰음식이다. 오늘 온 사람들 사찰요리 세 가지만 제대로 배워 현업에서 활용해 보라. 그런 인연이 만들어지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 ‘사찰음식 왜, 어떻게’를 화두로 던진다.

강의를 마친 정관스님은 ▷송이버섯누룽지탕 ▷김장아찌 ▷갓·솎음배추김치 세 가지 요리를 시연했다. 오신채(五辛菜: 마늘·파·달래·부추·흥거)를 쓰지 않는 절 김치는 어떻게 맛을 내는지 궁금했는데 양념에 갓 버무린 김치 한 가닥을 먹어보니 맛이 순하면서 아주 좋았다. 마늘과 파 없이 이런 맛을 내다니…곡차 생각이 절로 났다. 언젠가 내가 해보려고 들어가는 양념과 담그는 과정을 정리했다.

자배기(주둥이 넓은 질그릇)에 연잎 우린 물을 붓고 보릿가루 풀을 풀면서 소금(간수 뺀 천일염), 된장, 집간장(깊은 맛을 낸다), 묽게 갠 고춧가루, 초피가루, 마른고추·홍고추 묽게 간 것, 매실청·복분자청(단맛), 참깨가루(통깨 뿌리면 소화 안 되니 반드시 갈아서 쓰라고)를 차례로 넣고 잘 섞이도록 손으로 저어준다. 간은 약간 짭짤하다 싶게 맞춘다. 그릇을 흔들면 출렁일 정도로 묽게 양념을 만든다. 절여 둔 갓이나 배추에 양념이 고루 묻도록 버무린다.

김치를 저녁 상에 바로 올렸는데 모두 맛있게 먹었다. 2~3일 익혀 먹으면 맛이 어떨지 궁금했다.

스님의 지도 감독 아래 실습한 밥과 13찬으로 저녁 상을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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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셰프’ 동인들이 만들어 차린 저녁밥상은 당귀치자밥과 12찬이 올랐다. 송이버섯누룽지탕은 따로 차려졌다.

▷당귀치자밥 ▷초피 가루가 들어간 솎음배추김치와 갓김치 ▷더덕잣즙무침 ▷가지된장구이 ▷김장아찌 ▷감자채·통들깨볶음 ▷도라지·오이무침 ▷녹두전 ▷감자·석이버섯전 ▷도깨비여주나물 ▷단호박·두부찜 ▷모듬버섯참깨탕 ▷송이버섯누룽지탕(상 밖에 있음)

둘째 날 아침은 스님의 지휘에 따라 자원자 몇 사람이 식사 준비를 했다. 죽과 장아찌 중심의 비교적 단출한 8찬 식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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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스님 음식 맛의 비밀이 깃들여 있는 보물창고에는 각종 과일·산야초 청을 만드는 항아리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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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스님 음식 맛의 비밀이 깃들여 있는 보물창고에는 각종 과일·산야초 청을 만드는 항아리가 가득하다.

▷차조·쌀죽(바닥이 눋지 않도록 저으며 끓는 물을 조금씩 계속 보충) ▷들기름에 지진 손두부·산초열매장아찌 ▷도라지고추장장아찌 ▷무고추장장아찌 ▷양하장아찌(깊은 맛 내는 2년짜리, 향이 좋은 햇 장아찌 반반 섞어 채침) ▷여린 초피잎장아찌 ▷2년 묵은 갓김치 ▷생청국장·우엉 조청버무리(숭숭 썬 청·홍고추도 넣어 색 치장) ▷비트로 색을 낸 배추물김치

백양사에서 잠을 잔 독일의 호세 셰프도 새벽 댓바람에 올라와 아침 준비하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눈동자가 빛나는 게 뭔가 하나라도 더 보고 가려는 의욕이 역력했다. 우엉뿌리를 칼자루로 두드려 얇게 펴는 작업을 하는 테이블에 자리를 주선해 주니 아주 능숙하게 해냈다.

참가자들은 식사와 설거지를 마치고 바로 점심으로 먹을 사찰음식 실습에 들어갔다. 고별식사 음식이라 그런지 종류도 많고 내용도 화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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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나무에 열매가 잔뜩 열렸다. 비자나무 식생 북한계선인 백양사 일대에는 비자림이 잘 발달해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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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잎밥을 찌기 위해 싸고 있는 김남성(왼쪽)·이산호(가운데) 셰프와 묘운스님(오른쪽).

▷나물밥·연잎밥과 방아잎이 들어간 양념간장 ▷감자·고추·김·들깨송이 부각 탕수이 ▷절인 오디를 얹은 죽순전 ▷고추장양념우엉구이 ▷함초장아찌잡채 ▷능이버섯만두 ▷3색나물(박·고사리·취)볶음 ▷마찜흑임자무침 ▷식초·치자·복분자를 이용한 연근 3색 절이 ▷감말랭이·오이 오미자청무침(예전 절을 먹여 살린 게 감이라 할 만큼 백양사 감은 유명) ▷배·오이·견과류 겨자무침 ▷방아잎·고추전 ▷줄기 윗부분을 뚝 꺾은 불뚝상추전(전은 대부분 메밀가루에 약간의 찹쌀가루 넣어 부침)

참가한 요리사들은 열성이고 일사불란했다. 같은 주방에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내적 질서가 자연스럽게 잡히고, 시키지 않아도 궂은 일엔 젊은 사람들이 앞장섰다. 하나라도 배우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관찰됐다. 스님 당부대로 직접 만들어본 사찰요리 서너 가지는 현업에서 어떤 식으로든 활용하지 않을까 기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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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를 서둘러 만들기 위해 선풍기 바람에 소 재료를 식히는 여성 셰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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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이버섯만두를 빚는 호세 셰프. 가장 예쁘게 빚었다고 정관스님이 칭찬했다.

실습한 음식으로 고별식사 상이 차려지자 정관스님은 스마트폰으로 연신 음식 사진을 찍으며 흡족해 했다. 특이하게 괴성을 지르는 명상을 지도해준 식담(食談) 고수 묘운스님도 만면에 미소를 띠고 사진을 찍어댔다. 참가자들은 그러는 스님들을 사진 찍기에 바빴다.

오리지널 참가자보다 더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본 호세의 얘기를 들어봤다.

(발효음식의) 신맛이 이토록 다양하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재료의 맛을 최대한 끌어내는 솜씨도 놀라웠다. 능이만두는 능이와 표고버섯에 깻잎이 어우러진 향이 정말로 오묘하다. 잃어버렸던 맛의 근원을 되찾은 느낌이다. 음식 아이디어가 마구 떠올라 머리가 터질 지경이다.

지켜보던 부인 이씨는 벌써 걱정이 태산이다.

“돌아가면 레스토랑 주방이 난장판이 될 것이다. 한동안 이것 저것 해보느라 정신 없을 것이다. 3년에 한번씩 한국에 다녀가는데 그때마다 그랬는데 이번엔 훨씬 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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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러 온 셰프들이 만든 음식을 사진 찍느라 여념이 없는 스님들.

천진암을 나서 백양사를 배관(拜觀)하고 서울행 버스를 타러 걸어가는 30여분 동안 생각을 정리하다 문득 이런 말이 떠올랐다. 불모지에 핀 황홀한 야생화, 오랜 세월 결핍을 딛고 빚어진 건강식·완전식. 빠듯한 절 살림에 육류·오신채는 쓸 수 없는 이중, 삼중의 결핍 상황에서 사찰음식은 불성이 담긴 법기(法器)로서 수행자의 몸을 지키려니 기술은 정밀해지고 내공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을 터이다. 사찰음식의 근본정신이 음식·미각 과잉의 시대에 등을 후리는 경책(警策)이 되어 휘~, 나의 무명(無明)을 가르는 듯했다.

불교 전문 저널리스트가 “어떠십니까” 하고 마무리 감상을 청했다.

 나는 대답했다. “다른 조건 빼고 음식만 기준으로 말한다면 하산하기 싫습니다.

※사찰음식에 대해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면 한국불교문화사업단 사찰음식팀(서울 종로구 우정국로56 조계사 앞 템플스테이 통합정보센터 4/ 전화 02-2031-2000)로 알아보세요. 홈페이지(http://koreatemplefood.com/)를 참고해도 좋습니다. ‘공양간’ 코너에 들어가면 214가지 사찰음식 조리법이 실려있습니다. 매달 새로운 음식이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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