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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희의 맛따라기] 컴퓨터공학 박사가 끓이는 정직한 맛 ‘진시황 북어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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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어국, 밥과 3찬(오이·고추 장아찌, 깍두기, 얼갈이김치)으로 구성한 한 상 차림. 삶은 계란과 누룽지는 원하는 사람이 가져다 먹으면 된다. 3찬은 시절 따라 자주 바뀐다. 후추도 원하는 사람만 직접 갈아서 넣도록 통후추를 비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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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대 컴퓨터공학 박사(1993년), 수도권 대학의 교수(1991~1996), 이동통신 장비 만드는 ICT기업에서 연구원 80명을 지휘하는 연구소장(1997~2011). 지금은 8평 좁은 공간에서 북엇국(이게 표준어)을 끓여 파는 이규호(56) 조리사 겸 사장의 ‘스펙’이다. 나는 그가 황태 음식점을 열려고 수도권에서 잘한다는 집 약 100곳을 순회하고 있다는 소식을 음식업계 사람에게 일찍이 들었다. 개업 후 동향도 유심히 지켜봤다. 여러 가지 조건이 특이하기 때문이다. 2015년 9월 21일 문을 연 ‘진시황 북어국’(서울 마포구 만리재로 15 제일빌딩 1층/전화 010-5442-5970)이 그저께 첫 돌을 맞았다(‘북어국’은 이 집의 상호이자 상품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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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 북어국’ 간판 아래 유리창에 뭔가를 알리고 싶은 글자들이 소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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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점 외벽 3면 중 두 곳에 “아들!! 아침밥은 잘 챙겨 먹고 다니지?”라는 구호가 씌어있다. 주인과 인테리어 시공자 공동작인데 두 사람은 각자 아들만 둘이다.

‘진시황’이라는 상호를 보고 황제가 먹던 북엇국을 떠올릴 필요는 없다. ‘진짜 시원한 황태국’의 줄인 말일 뿐이다. 가게 입구에는 ‘아들!! 아침밥은 잘 챙겨 먹고 다니지?’라는 글귀를 유리 외벽 3면 중 두 곳에 크게 써 붙여 놓았다. 출입문에는 ‘아버지의 마음을 북어국에 담다’라는 제목 아래 다음과 같은 글이 씌어 있다.

1. 진심(眞心)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진정성 있는 마음.
2. 정성(精誠) 음식을 대하는 아버지의 바른 마음과 자세.
3. 고집(固執) 변화를 거부하는 아버지의 믿음직한 집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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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문에도 하고픈 말이 많이 씌어 있다. 주인의 다짐을 담은 3개항은 비장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문을 열고 식당 안으로 들어가면 ‘경영이념’ 액자가 보인다. ‘아버지의 마음을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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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은 전용면적 8평을 주방과 홀로 나눠 쓴다. 좌석은 2인 테이블 8개, 16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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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 앉으면 또 다른 구호가 기다린다. “경영이념-아버지의 마음을 담다.”

내부는 주방과 홀이 대략 반반, 2인용 테이블 8개가 한 줄로 촘촘히 놓여 있다. 써 붙인 내용은 얼마나 무거운 말들인가. 이렇게 무거운 생각들을 짊어지고 시원하고 맛있는 음식이 만들어질까, 걱정과 호기심이 동시에 피어 오른다. 일단 북어국(7000원)을 먹어보니 고소하고 구수하고 시원하다. 정직하고 고급스러운 맛이다. 국·밥·3찬이 쟁반에 한 상 차림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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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이 약하지 않나 하는 느낌은 들지만 국과 밥은 좋다.

좋다는 직장과 자리 다 거쳐서 북엇국 집 주인으로 자리잡기까지 이규호 박사의 사연과 음식에 관한 생각을 들어봤다.

그는 박사과정까지 대학교를 다니면서 학교 앞 식당에서 매식을 오래 했다. 먹을 때마다 음식을 왜 이렇게(맛 없게) 하나 못마땅했다. 그때 불쑥불쑥 “내가 이 다음에 어느 정도 뜻을 이루면 음식점 한번 제대로 해보겠다” 생각하고 주변에 말도 했다. 그걸 기억하던 후배들이 가끔 그 일을 일깨워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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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 앞에 걸어둔 안내판에는 주문부터 맛있게 먹는 방법까지 필요한 정보들이 정리돼 있다.

2010년 직장에 다니면서 음식점 구상을 구체화했다. 우선 요리학교에 등록했다. 1년 반 동안 공부해 한·중·일·양식 조리사 자격증과 식육처리기능사 자격을 땄다. 실무를 익히려고 1~2개월 과정의 창업반 수업도 두 과목(칼국수·고깃집) 수강했다. 막걸리학교에 나가 막걸리·맥주·식초 만드는 수업을 들었다. 간장·된장 만드는 공부도 했다. 직접 모든 걸 다루지 않더라도 좋은 물건 고르는 안목과 손님에게 설명할 능력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원래 칼국수 집을 하고 싶었다. 어려서부터 칼국수를 좋아했다. 어머니가 집에서 칼국수를 할 때 식구들 먹고 남으면 모두 차지하고 다 먹었다. 음식점을 하면 칼국수를 하겠다고 일찍부터 점 찍어뒀다. 잘하는 집 답사 다닐 때 아침에 밥 먹고 집에서 나가 하루 네 끼를 칼국수만 먹어도 싫지 않았다. 그런데 칼국수 집은 저녁 장사가 안 된다. 저녁에 고기를 팔 생각으로 고깃집 창업반 수강을 했다. 칼국수나 명태요리 잘한다는 수도권 음식점을 100곳 가까이 돌면서 먹어본 다음 내린 결론은 개성 있는 특이한 음식을 해야겠다는 것이었다. 안양 평촌에 복칼국수로 성공한 집이 있다고 해 가봤다. 거기서 뜻을 세운 게 황태칼국수였다.

46년을 살아온 동네에서 음식점 내려고 건물 1층 상가를 임대했다. 공부(公簿) 기록은 16평인데 실제 공사하려고 재보니 전용면적 8평이었다. 너무 좁아 칼국수나 북어 둘 중 하나만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둘 다 하려면 필요한 주방 최소 넓이가 안 나왔다.

북엇국으로 정해 개업 첫날은 10그릇, 둘째 날 20그릇, 셋째 날 30그릇, 넷째 날 40그릇을 준비해 팔았다. 혼자 모든 걸 하니 감당할 수 있는 노동강도를 테스트해본 거다. 40그릇이면 낮 12시30분~1시에 다 팔렸다. 그때부터 다음날 장사 준비를 하면 오후 7~8시에 일과가 끝났다. 국과 3찬, 밥, 삶은 계란, 누룽지 준비를 모두 직접 한다. 더 늘릴 수 없었다. 한 달 뒤 50그릇으로 늘려봤다. 오후 1시~1시30분에 매진됐다. 손님들은 15~20분씩 기다려야 했다. 너무 늦다고 불평이 쏟아졌다. 인색한 주인이라는 평까지 들렸다. 돈 아까워 종업원 쓰지 않고 손님을 기다리게 한다는 말이다. 개업 두 달 되던 무렵 직원을 한 명 썼다. 그때부터 하루 100그릇으로 늘렸다. 한여름에는 손님이 조금 줄었지만 100그릇은 영업시간 마감(오후 7시) 전에 대개 소진된다. 하루 80그릇이 손익분기점, 투자수익까지 맞추려면 100그릇은 팔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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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 빈 이중그릇에 담은 뽀얀 북어국. 티타늄으로 도금해 색깔이 연한 놋그릇 같아 뽀얀 국물이 더 선명하다. 국에는 황태와 두부 건지가 많이 들어가 국물이 먹다 보면 모자란듯하다.

‘진시황 북어국’은 사골육수와 북어 국물을 섞어서 끓인다. 3단계 과정을 거친다. 사골육수는 초기엔 직접 고았지만 시간이 너무 걸려(12시간) 포기했다.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 화구가 부족한 주방에서 일 흐름에 병목현상이 생겼다. 식당 넓이가 문제였다. 지금은 수도권 농협의 한우 사골육수를 받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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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어국 끓이기 1단계 작업은 채수 만들기이다. 대파·양파·무·고추씨·청양고추·다시마·건오징어·멸치·디포리(말린 밴댕이)를 넣고 1시간 동안 끓인다.

북어 국물은 채수(菜水; 주인이 쓴 용어) 만들기로 시작한다. 대파·양파·무·고추씨·청양고추·다시마·건오징어·멸치·디포리(말린 밴댕이)를 넣고 1시간 끓인다. 주인은 아침 6시30분 출근해 이 준비부터 한다. 청양고추를 넣으면 국물 뒤끝이 깔끔해지는 효과가 있다. 부모 따라오는 어린 손님도 제법 있어 맵지 않을 정도로 조금만 넣는다. 처음엔 황태 대가리도 넣었지만 황태 살이 많이 들어가는 음식이니 대가리에서 우러난 맛이 크게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 지금은 쓰지 않는다.

황태는 용대리 한 덕장에서 말려서 살만 찢은 채를 사온다. 값이 중국산보다 1.8~2배로 비싸다. 시장에서 사면 중국에서 말린 명태가 더 많다. 명태는 대부분 러시아 해역에서 잡는다. 원산지 표시를 러시아라고 하면 전문가도 구분 못한다. 국내 덕장에서 말린 북어 포장에는 ‘국내가공’이라고 잘 보이도록 크게 써 붙였다. 일반 소비자들도 살 때 그걸 꼭 확인해야 한다.

채수가 준비되면 황태를 볶는다. 황태 채를 손가락마디 만하게 잘라서 쓴다. 그는 음식이 단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음식물이 넌출처럼 수저 밖으로 걸쳐 있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꼼꼼히 잘라 국을 끓인다. 사람들은 김장김치 꼭지만 따서 한 가닥 손으로 잡고 쭉쭉 찢어 갓 지은 쌀밥에 얹어 먹으면 맛있다는 식담(食談)을 자주 입에 올린다. 하지만 그는 정면 거부한다. 그걸 권하는 어머니와 언쟁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는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공무원인 아내 대신 어머니가 살림을 챙긴다.

황태를 볶기 전에 쌀뜨물 자작하게 부어 불린다. 노랗게 황태 물이 든 뜨물도 넣고 참기름에 볶는다. 황태는 살이 부서지지 않을 정도까지 볶는다. 볶은 황태와 채 친 감자를 채수에 넣고 2시간을 더 끓이면 북어국물이 완성된다. 감자를 넣는 건 강원도 방식이다. 2시간을 끓이면 감자는 녹아서 보이지 않지만 국물 밀도를 높여주고 담백하고 깔끔한 맛을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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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단계 작업으로 북어국을 끓여야 한다. 참기름 둘러 볶은 황태 채를 채수에 넣고 2시간 동안 끓인다. 이 국에 한우 사골국을 50 대 50으로 섞고 다시 한번 끓여서 상에 낸다.

손님이 주문하면 사골육수와 북어국물을 50 대 50으로 섞어 한소끔 끓여서 낸다. 비율을 다르게 여러 번 실험해봤지만 반반이 가장 맛있었다. 화학조미료(MSG)도 넣는다고 솔직히 말했다. 주인의 사람됨을 아는 음식업계 선생·선배들이 ‘얼마나 넣느냐’고 걱정 삼아 묻는다고 한다. 알려주면 하나같이 “그거보다 최소 4배는 넣어야 돼”라고 야단을 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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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호 사장은 황태국에 계란을 풀면 황태의 시원한 맛을 가린다고 생각해 아침마다 계란을 삶아서 원하는 손님만 먹게 쌓아둔다.

그는 북엇국에 계란을 풀지 않는다. 대신 계란을 삶아 식당 한쪽에 쌓아두고 손님 마음대로 먹도록 했다. 이유를 들어보면 그의 성격이 보인다.

맛 깡패로 꼽는 식재료 세 가지가 있다. 계란·참기름·김이다. 다른 재료와 섞이면 모든 맛을 다 덮어버린다. 황태국에 그런 재료 섞을 거면 좋은 황태 굳이 쓸 필요 없다. 황태 볶을 때 참기름을 쓰기는 하지만 육수 마지막 단계에서 다 걷어낸다. 국에 뜬 기름 거의 안 보일 만큼 세세히 뒤처리를 한다. 그런데 황태를 참기름으로 볶지 않으니까 맛이 우러나지 않더라. 맛 내는 성분이 지용성이라서 그런 게 아닌가 추측한다. 황태의 국 맛을 제대로 살리려고 계란 안 푼다. 건지 적다고 콩나물 넣으라는 사람도 있는데 콩나물도 너무 강해서 황태 맛을 흐린다. 계란 풀고 콩나물 넣으면 복잡한 과정 필요 없다. 대충 해도 비슷하게 맛 낼 수 있다. 그런 음식은 내가 좋아하지 않는다. 만들고 싶지 않다. 부드러운 맛, 은은한 맛, 고상한 맛이 나는 음식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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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장사할 북어국이 끓는 동안 이규호 사장은 아침 영업을 위해 전날 남겨둔 국으로 식사를 한다. 날마다 변함없는 일과다.

하루 영업을 끝내고 나갈 때 30인분의 육수를 남겨 급랭 보관한다. 다음날 아침 영업할 양이다. 새로운 국물 만드는 3시간 동안 그걸로 손님을 맞는다. 주인은 오전 6시 30분에 나와 장사 준비하고 국물을 안쳐 끓이는 동안 자신이 만든 북어국으로 식사를 한다. 그날의 국 맛을 알아야 손님의 물음에 응답을 할 수 있어 매일 먹는다. 하루 묵은 국, 좀 식은 국이 더 맛있고, 북어국을 매일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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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 오대미로 갓 지은 밥. 이규호 사장은 밥에 굉장히 공을 들인다. 특히 쌀 산지보다 품종을 따지는데, 현재는 철원 오대미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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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지은 밥을 상에 내기 위해 작은 밥솥 3개를 준비해 자주 밥을 짓는다.

밥에도 공을 많이 들인다. 쌀은 철원 오대쌀만 쓴다. 산지와 품종이 확실하고 밥 맛이 좋아서 골랐다. 쌀은 산지보다 품종이 중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가정용 작은 전기밥솥 3개를 놓고 여러 번 나누어 밥을 짓는다. 10인용 솥인데 가득 채워 지으면 밥이 눌려 맛 없어진다고 용량의 절반만 채운다. 손님에게 20분 이내에 지은 밥을 내려고 노력한다. 손님들은 밥 맛이 좋다며 솥이 어느 회서 제품이냐고 자주 묻는다. 솥보다 쌀이 좋아야 밥맛이 좋다고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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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호 사장은 지은 지 20분 넘은 밥은 가능하면 손님 상에 내지 않으려 한다. 남은 밥은 누룽지로 눌려 손님에게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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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룽지가 노릇노릇 잘 눋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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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가져다 먹을 수 있게 둔 누룽지 몇 쪽을 국에 말아 먹어도 별미다.

‘아들!! 아침밥은 잘 챙겨 먹고 다니지?’ 카피는 ‘진시황’ 상호와 같이 식당 인테리어를 한 사람의 솜씨다. 주인과 그는 아들만 둘이다. 둘이 상의해 만든 남성형 구호에 여성들 항의는 없는지 물어봤다.

제수씨가 식사하러 와서 ‘그럼 우리 딸은 어떡하냐’고 농반진반(弄半眞半) 물었다. 모든 자녀들을 생각하는 마음을 ‘아들’이라는 말에 담았다고 말했다. 여성 무시 같은 건 의식해본 적 없다.”

영업시간 오전 7시~오후 7시(토요일은 오후 3시/재료 떨어지면 시간 안 돼도 종료). 휴일은 일요일·공휴일, 샌드위치 토요일. 포장판매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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