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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 영화천국] '눈' 밝아야 흥행배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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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장화, 홍련’덕분에 염정아라는 배우를 다시 보게 됐다. 배우들은 어떤 역을 하느냐에 따라 정말 달라보이는 것 같다. 시나리오를 고르는 그들의 기준은 뭔가.

A: 맞다. 여자와 집은 꾸미기 나름이라는 말도 있지만 배우야말로 배역 나름이다. 그래서 배우 제1의 자질은 시나리오 고르는 눈이라고들 한다. 염정아는 이전에도 '재즈바 히로시마''테러리스트''텔 미 썸딩''H'등 수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불행히도 관객의 뇌리에 남는 데는 실패했다. 새된 목소리로 "어머나~ 니네들 왔니?"하며 호들갑을 떠는 '장화, 홍련'의 새엄마 이상가는 역할이 없었다는 얘기다.

충무로에서는 거절한 영화가 '대박'이 나거나 자신이 제안받았던 역을 대신 한 배우가 순식간에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식의 어처구니없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불운의 배우'하면 차인표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간첩 리철진'과 '쉬리'를 거절했다. '간첩 리철진'은 유오성을 충무로 A급으로 키웠고 '쉬리'는 한국 영화의 중흥을 연 기념비적인 작품이 됐다.

그런가 하면 임창정은 '행운의 배우'에 속한다. '색즉시공'은 김민종에게 갔다가 "야하고 엽기적인 장면이 많다"며 되돌아온 작품이었다. 임창정은 감독과 숙의 끝에 수위를 조절했고 결국 4백만 홈런의 주역이 됐다.

이제까지 시나리오 고르는 '눈'의 대명사는 한석규였다. 한석규는 형이자 매니저인 한선규씨의 조언에 힘입어 출연작마다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올초 '이중간첩'이 실패하면서 신화도 무너졌다.

쇄도하는 시나리오를 수년간 마다하다 지난해 말 사극 영화를 첫 주연작으로 택한 A씨. 그에게 퇴짜를 맞은 제작자들은 "콧대가 세도 유분수"라며 험담을 한다. 그러나 A씨가 거절한 영화 중에 성공작이 없다는 건 우연으로 치부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안경을 벗느냐 안 벗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영화가 얼마나 좋은가 입니다."

그렇다. "처음부터 끝까지 막힘 없이 쭉 읽히면 합격"이라는 게 원칙이라면 원칙이다. 하긴 읽을 때도 재미없는데 영화라고 재미있을 리는 만무. 대사나 등장하는 장면은 다다익선이다. 여배우들이 배역을 정할 때는 벗느냐 아니냐, 상대 남자배우가 누구냐를 까다롭게 따진다.

결국 시나리오 고르는 기준은 별 게 없다. 영화가 성공하면 눈 밝은 배우고 꽝이면 아닌 것으로 치부되는 셈이다. 충무로에서는 늘 '복불복'론이 힘을 얻는 것 같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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