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분 동안의 진흙탕 싸움이었다. 정책은 없고 인신공격만이 난무했다.
속사포처럼 쉴 새 없이 잽 펀치를 날리는 도널드 트럼프에게 힐러리 클린턴은 묵직한 카운터펀치로 맞섰다. 정치적 숙련도라 할까 내공에서 차이가 났다. 세기의 대결답게 26일 오후 9시부터 미 뉴욕주 호프스트라대학 강당에서 열린 미국 대선 1차 TV토론은 시종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쿨했던 트럼프 11분 지나 흥분
“틀렸어” 27차례나 끼어들어
한숨 쉬고 코 훌쩍거리기도
이날 최대 관심사는 ‘어떤 트럼프’로 나올지였다. ‘대통령감’을 부각하기 위해 ‘점잖은 트럼프’로 변신할 것인지, 기존의 ‘트럼프 스타일’을 고수할 것인지였다. 답은 ‘둘 다’였다. 처음 몇 분 동안은 목소리 톤도 낮게 깔고 클린턴의 대답에 동의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그러나 토론 시작 11분이 지나면서 트럼프의 쿨한 모습은 돌연 사라졌다. 클린턴 답변 도중 계속 끼어들어 “난 그런 말 한 적 없어!” “틀렸어, 틀렸어!” “어디서 내가 그런 말을 했다는 자료를 찾은 거지?” 등을 외치기 시작했다.
중간에 상대방의 말자르기를 한 횟수는 트럼프가 27번, 클린턴은 5번이었다. 이때부터 트럼프의 리듬이 망가졌다. 때때로 “휴~” 하는 한숨까지 쉬었다. 게다가 클린턴의 건강 문제를 공격해야 할 트럼프 본인이 감기에 걸려 코를 훌쩍거렸다. 그 횟수가 늘면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TrumpSniffles(트럼프의 코 훌쩍거림)란 해시태그가 빠르게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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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토론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인 한마디는 토론 시작 50분쯤 나왔다. “당신이 집에 있는 동안 난 유세 다니며 유권자 목소리를 들었다”는 트럼프의 공격에 클린턴은 “당신은 나를 비판하기 위해 이번 토론을 준비했겠지만 나는 대통령이 되기 위한 준비를 했다”고 맞받아쳤다. 박수가 터져나왔다. TV토론은 원칙적으로 객석의 박수나 야유가 금지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