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삼성화재배세계바둑오픈] 대악수(36)를 둔 뤄시허, 벼랑 끝으로 몰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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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제10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4강전 2국 하이라이트>
○ . 뤄시허 9단(중국) ● . 최철한 9단(한국)

현대바둑은 끝없이 싸운다. 과거의 고수들은 느릿한 호흡으로 승부를 길게 바라봤다. 상대가 원하는 것도 종종 들어주며 포석-중반-끝내기의 절차를 차분히 밟아나갔다. 지금의 고수들은 찰나에 승부를 건다. 포진도 하지 않고 곧장 싸우며 갈기를 높이 세우고 터럭만큼도 물러서려 하지 않는다. 앞길이 불안한 상황에서도 어찌 그렇게 기세를 칼날처럼 곧추세울 수 있는지, 그 모습이 참 신기하다.

장면 1=백△의 절단에 '독사' 최철한 9단은 31로 사납게 반발해 버렸다. 없는 수는 아니다. 그러나 32로 돌파당하며 우변 집이 무너지는 게 싫어 여간해선 두지 않는 수다.

최철한은 쉽게 살려주고 싶지 않았다. 32, 34로 돌파당하더라도 35로 두드려 전체를 공격하겠다는 의지다. 그 시퍼런 서슬에 놀란 것일까. 뤄시허(羅洗河) 9단이 36이란 대악수를 두고 있다. 최철한이 기세를 늦추지 않고 37로 다시 한번 힘차게 머리를 두드리자 백 대마가 돌연 갑갑해졌다.

참고도=백1로 막는 수가 침착한 정수라고 박영훈 9단은 말한다. 흑도 3 자리를 끊는 패는 부담이 너무 커서 안 된다. 그래서 흑2로 잇게 되고 백도 3에 잇는다. 흑은 물론 대마를 공격해 오겠지만 백도 A와 B를 맞보고 있어 잡히지는 않는다. 악수를 하나도 두지 않았으므로 팽팽하게 싸워나갈 수 있다.

장면 2=백△와 흑▲의 교환이 너무 악수여서 백은 돌이 뭉치고 말았다. 38로 따냈으나 우하 39가 좋은 팻감. 백은 귀를 한 수로 제압할 수 없으므로 패를 받아야 한다. 이 틈에 흑은 43, 45로 빵빵 따내며 백을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41.44.47=패때림).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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