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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마라톤 「금」따는 것 보고싶다."|베를린제패50주년…그날을 회상하는 손기정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한국인 최초의 올림픽금메달리스트인 손기정(74)옹이 베를린 올림픽에서 월계관을 쓴지 9일로 꼭 50년이 된다.
대한청년의 강인함과 기개가 세계만방에 울려 퍼지던 날, 온 겨레가 망국의 비애와 핍박의 설움을 감격의 눈물로 씻어냈던 그날이 바로 1936년8월9일.
『불과 몇 년 전일 같은데 벌써 반세기가 흘렀다니…』
당시 24세의 나이로 세계신기록, 올림픽신기록을 작성하며 세계마라톤을 제패했던 그도 그러나 이제는 고희를 넘어선 백발이 성성한 노인으로 변해 인생의 덧없음을 실감케 한다.
올해는 특히 베를린 마라톤우승 50주년이 되는 해인데다 그동안 베를린에 보관돼 있던 마라톤제패기념 그리스청동투구가 반세기만에 손옹에게 돌아오게 되어 더욱 뜻이 깊다며 감회에 젖는다.
며칠전 일본에 있을 때 일본기자들이 찾아와 투구를 되돌려받는 소감을 물어 『당신들이 내게 물을 것이 아니라 어찌해서 50년만에야 되찾는 것인지 내가 당신들에게 묻고싶다』며 반문했다고 한다.『그들이 이제와서 투구를 되돌려 주는 이유가 뭐겠소. 다 그만큼 우리의 국력이 신장됐다는 증거가 아니겠소.』
70노인답지않게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좌중을 압도하는 손옹은 50년전 레이스상황과 우승소감을 묻는 질문에 시선을 창밖으로 향한채 차분한 목소리로 당시를 회상해낸다.
-이날은 매인스타디움을 가득메운 10만관중의 뜨거운 열기 못지않게 날씨마저 유난히 더웠다. 8월9일 하오3시2분, 출발신호와 함께 27개국 56명의 선수들이 일제히 주경기장을 빠져 나갔다. 나는 아예 손에 손수건을 감고 뛰었는데 처음에는 키가 작은 영국의 「하퍼」가 선두를 달렸으나 중간지점에 와서는 나와「하퍼」가 나란히 뛰었다.
그때 「하퍼」는 옆에서 뛰는 나에게 뭐라고 자꾸 말을 했었는데 나는 영어를 알아듣지 못해 대답도 못한채 단지 그가 나에게 뭔가 시비를 거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처음부터 너무 빨리 뛰면 종반레이스를 망친다는 충고였었다고 한다.
1시간12분의 질주끝에 내가 반환점을 돌아나오자 『기정아, 4분전에 「자바라」가 지나갔어. 비스마르크언덕에서 그놈을 잡아야 돼』라며 권태하선배가 고함을 지르면서 찬물 한바가지를 퍼부어 줬다.
고갯길에 접어들자「자바라」의 외로운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를 악물고 뛰어 그를 앞질러 나갔다.
올림픽2연패를 꿈꾸던 아르헨티나의 영웅은 이 죽음의 언덕에서 힘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언덕을 넘어 37㎞지점을 통과했을 때 결승점에 이르는 길목이 양편에 늘어선 관중들로 흡사 어둡고 긴 터널처럼 내게 다가왔다.
『한국인, 그러나 망국의 청년』나는 수없이 이 두마디를 되뇌며 터널을 빠져나갔다. 드디어 메인스타디움이 눈에 들어오고 흰 결승테이프가 나의 뜨거운 가슴에 와 닿는순간 10만관중의 환호와 터지는 박수소리.
그때서야 나는 우승이라는 벅찬 감격을 느낄수 있었다.
그러나 희열과 감격의 순간도 잠시뿐 정작 함께 기쁨을 나누고 싶은 조국에 돌아왔을 때는 국내신문의 일장기 말살사건등으로 환영식은 커녕 고등계형사들의 살벌한 감시를 받아야 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24세의 젊은 나이에 내 인생의 절정을 체험했다. 그이후 내생애는 말하자면 덤으로 사는 인생이었다-. 「덤으로 사는 인생」. 노옹은 이말을 마친 후 더 이상 말을 잇지못한다.
한국인이 세계마라톤을 제패한지 어언 50년, 그러나 도도한 물결에 밀리듯 후퇴하는 한국마라톤의 현실을 직시할때 『나는 과연 무엇을 했는가』라는 아픈 질책과 자책을 금치 못한다고 털어놓는 노옹은 『올해도 그렇지만 88서울올림픽에서 우리선수가 마라톤메달을 목에거는 모습을 보고싶다. 한국이 세계기록을 따라갈 수 없다고 체념하는 그자체가 문제』라고또한번 후배들을 채찍질한다.<문일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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