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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늙은 분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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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전수진 기자 중앙일보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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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진
정치부 기자

호호백발 할머니가 돼도 입에 담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말이건만 나도 모르게 내뱉고야 말았다. “요즘 젊은것들은…”이란 말.

20대 직원에게 카카오톡으로 퇴사 통보를 받았다는 중소기업 대표의 하소연을 들으면서다. 40대인 그도 “요즘 애들은 근성이 부족하다”고 맞장구쳤다. 그러곤 침묵. 이런 말을 하는 상황 자체가 우린 ‘요즘 젊은것’이 아니라 (동방예의지국이니 ‘것’ 대신 ‘분’으로) ‘요즘 늙은 분’에 가까워지는 거라는 자각 때문이다.

20대들에겐 ‘예비 꼰대’이고 50대 이상에겐 ‘머리에 피가 덜 마른’ 세대여서일까. 화제몰이 중인 SBS 다큐멘터리 ‘요즘 젊은것들의 사표’를 보는 마음도 복잡했다. 간신히 취직했지만 1년 내 퇴직하는 신입사원 비율이 28%에 달하는 이유를 파고들었다. ‘요즘 젊은것들’도 할 말은 많았다. 의미 없는 야근에 지쳐서,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대기업을 그만두고 스쿠버다이빙 강사가 된 이들의 얘기가 생생했다.

그럼에도 불편했던 이유. 회식 자리에서 조직의 막내가 수저를 놓는 등의 문화가 이 다큐에선 조직문화의 폐해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문화에 개선 여지가 많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직서는 카톡으로 보내는 게 아니고, 회식 자리에선 막내가 수저를 놓는 게 맞다(어디선가 “이런 꼰대”라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지만).

‘요즘 젊은것들’이란 한탄은 21세기의 전유물이 아니다.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고 수천 년간 계속됐다. 중국 사상가 한비자(기원전 280∼233년)는 저서에서 “요즘 젊은것들은 부모가 화를 내도 고치지 않고 (중략) 스승이 가르쳐도 변할 줄 모른다”고 지탄했다. 역시 기원전 470년생으로 “너 자신을 알라”던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요즘 애들은 폭군”이라며 미래가 암울하다고 개탄했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2500년이 지나도록 지구는 멸망하지 않았다. 결국 각 세대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기에 서로를 멀리하고 미워하는 건 아닌지. 세상을 살아온 덕과 경험치로 젊은 세대를 아량 있게 이해해주면 어떨까 싶다.

아무리 그래도 ‘요즘 젊은것들’을 이해하기 어렵다면? 노먼 매클레인의 소설 『흐르는 강물처럼』의 다음 구절에서 위안을 찾자.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이야말로 우리를 곤란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사랑할 수 있다. 완전한 이해 없이도 완전한 사랑은 가능하니까.” 그리고 기억하자. 우리 모두, 한때는 ‘요즘 젊은것들’이었다.

전수진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