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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붕대로 맨 탁구 라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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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박정호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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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
논설위원

한가위 연휴가 끝난 지난 19일 새벽, TV에 비친 한 선수가 눈에 확 들어왔다. 휠체어에 앉아 탁구를 치는 그의 오른손엔 붕대가 감겨 있었다. 손과 라켓이 하나가 됐다. 브라질 리우 패럴림픽(Paralympics·장애인올림픽) 남자탁구 TT1-2 단체전 결승, 한국과 프랑스의 전날 경기를 녹화로 즐겼다. 2단식에 나선 한국의 김경묵(51) 선수. 5세트 접전 끝에 프랑스 선수에게 3-2로 승리했다. 이날 팀은 아깝게 은메달에 그쳤지만 김 선수의 분투는 도드라졌다.

 그는 쉰을 넘은 ‘늙은’ 선수다. 희끗희끗한 머리칼에 깊은 주름살, 풀 세트 경기 도중 피곤해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럼에도 잊히지 않는 건 손에 두른 흰색 붕대. 두 팔은 움직일 수 있지만 손가락 근력이 없어 라켓을 손에 묶어야 했다. 사정은 상대편도 마찬가지다. 가운데 네트를 두고 공을 주고받는 그들을 보며 ‘인간에 대한 예의’를 새삼 떠올렸다. 장애와 비장애를 넘어 사람의 아름다움에 고개를 숙였다.

 자료를 뒤져 보며 다시 한번 놀랐다. 김 선수는 이번이 일곱 번째 패럴림픽이다. 1992년 바르셀로나부터 2016년 리우까지 연속 참가 기록을 세웠다. 89년 처음 국가대표로 선발됐으니 태극마크를 단 지 어느덧 28년째다. 그간 패럴림픽 개인·단체전에서 획득한 메달만 13개. 83년 해병대에 입대한 그는 경계근무 중 전선줄에 걸려 아래로 떨어져 목뼈를 다치고 사지마비가 왔다고 한다. 지난 시간 그가 흘린 땀이 범인(凡人)으로선 상상이 안 간다.

 올림픽이나 패럴림픽은 인간 드라마의 우듬지다. 김 선수보다 더한 사연도 많겠지만 그 경중을 저울로 잴 일은 아니다. 극도의 긴장도 뒤따르기 마련이다. 지난달 리우 올림픽이 끝나고 한국 핸드볼의 왕언니 오영란(44) 골키퍼의 인터뷰를 시도했다. 8강 진입엔 실패했으나 96년 애틀랜타를 시작으로 다섯 차례 올림픽에 나갔던 그의 소회를 듣고 싶어서였다. “정신적·육체적으로 지쳤어요”라는 완곡한 사절에 “예, 알겠습니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 오후 패럴림픽 한국 선수단이 한 달여 장정을 마치고 귀국한다. 그들의 편안한 휴식을 기원한다. 결승전을 마친 김경묵 선수의 바람도 “정말 힘든 기간이었다. 이제 (집에) 가서 쉬고 싶다”였다. 또한 북핵·지진 등 불안과 위험의 사회, 인간의 존재 이유를 일러준 선수단에 감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에 ‘예스’를 말한다.” 7년 전 타계한 김수환 추기경이 평생 가슴에 새긴 말이다.

박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