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재정부터 해결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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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요즘같은 휴가철이 아니더라도 차를 타고 국도를 달리다 보면 기이한 현상에 부딪치게 된다.
정연하게 줄지어 선 가로수와 매끈한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계속되다가도 읍이나 시계에 들어서기만 하면 사정이 확연히 달라진다. 길이 땜질로 옽오 상처투성이고 울퉁불퉁하고 푹 팬 곳이 여기저기 내버려져 있다.
국도에 비해 통행하는 차량도 훨씬 많고 왕래하는 사람도 비교가 안될만큼 많은데 길은 반대로 이지경이니 이상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선뜻 이해하기 힘은 현상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시골 어디에 가도 눈에 뛴다.
다같은 길인데 국도와 지방도에 따라 사정이 판이한 것은 도로의 개설과 관리 주체가 전자는 중앙정부이고, 후자는 지방행정기관이 맡고있기 때문이다.
지방재정이 궁핍해 자체수입으로는 공무원 인건비도 충당하기 어려운 실정이니 도로사정이 이럴 수밖에 없다.
도로가 이러하니 상·하수도를 비롯해 주민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생활기반과 복지수요시설은 가위 짐작하고도 남는다.
내년 지자제실시를 앞두고 갖가지 방안과 의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나 정작 깊이 있게 다루어져야할 지방재정 문제는 소홀히 취급되고 있는것 같다.
정부가 약간의 전매익금과 전화세 등을 지방에 넘겨주겠다고 하나 이 정도로는 속된 말로 「간에 기별도 안가는」액수다.
지자제 실시에 앞서 한창 논의를 거듭하고 있는 선출방법이나 정당참여문제, 직선제 실시 여부가 상부구조라면 재정문제는 그 기초에 해당된다.
지방재정의 자립문제에 관한 논의나 해결방안 없이 상부구조만 거론하는 것은 머리나 얼굴 생김새만 신경을 쓰고 몸통과 팔·다리 걱정은 도외시하는 것과 다를바 없다.
내무부 잠정계산에 의하면 지방자치를 실시하게 되면 당장 필요한 돈이 5천억원이 된다는 것이다.
지방의회가 들어설 건물등을 제쳐놓서라도 선거비용과 의회사무요원, 의원세비, 기타 운영비 등에만 연간 5천억원이 소요된다고 한다.
정부가 전매익금중에서 주기로 한 8백36억원과 전화세 2천15억원을 몽땅 쓸어넣어도 태부족인 실정이다.
그렇다고 지자제를 한다고 해서 궁색한 살림형편을 펴게할 부족한 수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웬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현재 지방자치단체의 자체수입으론 인건비도 줄 수 없는 딱한 실정에 있는 시·군이 자그마치 전체의 58%나 된다.
전국 57개 시가운데 순천시등 13개시(23%)와 1백39개 군 가운데 김릉군등 1백9개군(78%)이 이에 해당한다.
지방재정상태가 이렇게까지 된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정부가 지방재정 배분에 있어 지나치게 인색했고 지역의 균형발전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다.
국가전체 세원의 87%를 중앙정부가 차지, 국세로 거두면서 지방에는 겨우 13%밖에 지방세로 할당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지방자치단체에 주는 교부금은 올해들어 겨우 1조원을 넘었을 뿐이다.
소득있는 곳에 세금이 있는 법인데 공장도 없는 텅빈 농촌에 세금을 거두는데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설혹 공장이 있다해도 세금은 본사가 있는 도시에서 내는게 보통이다.
일본만 보더라도 국가세원의 상당부분을 지방에 넘겨주어 일본정부의 연간예산(55조엔)과 지방자치단체의 예산규모(54조엔)가 거의 맞먹는다.
우리나라의 연간 지방예산이 4조1천억원으로 정부예산(13조8천억원)의 32%에 불과한 형편과는 너무 엄청난 대조를 보이고 있다.
일본은 지자제를 처음 실시했던 50년대에도 지방예산규모가 정부예산의 81%나 되었고 70년대에는 정부예산규모보다 오히려 20%나 많았다.
거기에 비해 우리나라는 60년대의 37%보다 오히려 5%나 떨어졌다.
유흥음식세등을 비롯해 지방재정수입에 대종을 차지하면 덩치 큰 지방세적 성격의 세금들은 중앙정부 차지로 해놓고서는 지방에 돈주는데는 내 돈주듯 생색과 핑계가 많았다.
지금이라도 진정 바람직한 지자제를 실시할 요량이라면 국세중에서 지방세 성격을 가진 주세나 부가가치세중의 음식·숙박업분이나 특별소비세 가운데 골프장·스키장·카바레·요정·나이트클럽 등에서 거둬들이는 세금을 지방세로 이관해주어야 할 것이다.
교통과 통신수단의 발달로 전국이 1일 생활권이니, 반나절 생활권이니 하고 운위하게 되면서 지방행정과 재정수요는 하루가 다르게 급증하고 있다.
지자제를 하지 않더라도 지방재정에 무슨 처방이나 단안을 내리지 않으면 지역간의 불균형이나 이로인한 불만과 갈등은 해소하기 힘들게 됐다.
지자제 실시에 바탕이 되는 지방재정의 과감하고도 획기적인 개혁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요란한 백가쟁명의 지자제 논의도 공소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이원달<본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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