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진상 규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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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민정당은 부천경찰서 여대생 성폭행 사건의 진상을 국회에서 규명키로 했다.
「부천 사건」은 이미 검찰의 진상조사 발표가 있었지만 야당과 재야 세력, 종교단체는 잇달아 규탄의 모임을 갖고 있으며 이를 막으려는 경찰과 충돌이 반복되는 등 세상이 어수선하다.
이런 상황에서 민정당 정책위의장단과 상임위원장. 연석회의에서 정부발표에 강한 불만을 제기하며 당이 행정부를 적극 주도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왔다.
이 모임에서는 몇몇 여당국회의원들 조차『부천서 성폭력사건과 재야의 명동집회 방해 등을 보면서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너무 많다. 진실이 밝혀져야 당이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을 것이 아닌가』라는 자성론을 제기했던 모양이다.
이같은 분위기가 말해주듯 민정당 일각에서 마저「부천 사건」의 진상을 국회가 나서서 규명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으며 이는 헌법개정 등 대사를 앞둔 향후의 정국에 적지 않은 정치적 부담을 주고있는 현실을 제대로 인식한 것으로 평가된다.
사실 여당의 입장에서 보면「부천 사건」이 하나의 단순한 폭행사건의 범주를 넘어 정치사건으로 비화해 국민으로부터 불신의 인상을 받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민정당이 뒤늦게라도 이사건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진상 규명에 나서기로 한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부터다. 지금까지의 숱한 예에서 보아 왔듯이 국회상위를 열어 진상조사의 시늉만 하고 어물어물 넘어간다면「문제의 해결」이 아닌 또 다른 문제의 시작이 될 가능성이 짙다.
국회에서 거론했다는 의미를 부여하는 선에서 흐지부지된다면 공연히 불씨만 키워 놓아 국회불신감만 안겨주게 될 것이다.
만일 「부천 사건」이 국회에 의해 전연 새로운 진상을 들추어낸다면 검찰의 위신과 국민의 충격이 클 것이다. 그러나 의혹과 불신에서 빚어지는 해독은 그 어떤 재난보다 크다는 것을 우리는 과거의 숱한 정치사건들에서 보아왔다.
따라서 민정당이 진상규명에 나서지 않았다면 몰라도 조사에 임하게 된 바에는 국민의 의혹이 말끔히 씻겨지도록「실체적 진실」을 찾아내는데 성의와 노력을 다해야만 한다.
조사과정의 공개는 물론이고 사건당사자와 증인, 참고인등을 망라해 증언을 들어보아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만이 조사의 공정성과 객관성이, 나아가서는 신뢰성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거론하기조차 수치스러운 이 사건이 하루빨리 깨끗이 해명되고 수습됨으로써 정치에너지를 이런 일로 낭비하지 않고 개헌 등 정치본연의 현안들에 집중되기를 바라는 충정에서 고언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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