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영『천둥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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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객주』의 작가 김주영의 『천둥소리』가 출간되었다. 그동안 연작 형태로 『문예중앙』 『세계의 문학』 등에 발표되었는데 이렇게 책으로 묶여지게 되니, 단편으로서 이해가 안가던 여러 부분이 자연스럽게 해명되었다. 이 작품을 보다 분명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몇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①『천둥소리』는 얼마만큼이나 새로운 소설인가? - 끊임없는 자극을 요구하는 성급한 독자의 안목으로 보아서는 이 작품은 그렇게 새로울 것이 없다.
그러나 신길녀라는 한 여인의 가난과 고행·희생을 통해서 8·15에서 6·25에 이르는 민족사적 혼란기의 역사적 진행 과정을 꿰뚫어 보려는 작가의 의도는 충분히 새로운 것이다. 역사적 격변기의 피해자 중의 피해자는 남자가 아닌 여자다. 그들은 대항할만한 사상도 힘도 조직도 없기에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한다. 작가는 여기에 초점을 맞춰 한 여인의 파란만장한 삶의 유전기를 그리는 동시에 그러한 고난속에서도 살아남아야 할 이유를 밝히고 있다.
②『천둥소리』의 주인공 신길녀는 무엇을 나타내고 있는 인물인가 - 신길녀는 시대의 폭력과 사상의 폭거에 희생당한 우리 민족의 수난사를 표상하는 인물이다. 신길녀가 우익 기회주의자 차병조와 트럭운전사인 좌익 기회주의자 지상모에게 강간을 당해 아이를 갖게 되고 머슴이었던 황점개의 사모를 받게되는 것은 8·15이후의 뒤얽히고 헝클어지고 다시 꾄 어지러운 사회상을 반영한다.
신길녀는 애상적인 한을 대변하는 여인은 아니다. 시련 속에서도 자기 가족을 보존하려는 본능적 욕구를 승화시켜 삶을 삶답게 살아보려는 생명의 주체적인 역할을 하는, 억세어 보이지는 않으나 내면적으로 굳센 그런 여인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인물이지만 그 가치를 곧 잘 망각하게 되는 여인이다.
③『천둥소리』의 독특한 어휘구사와 문체적 특징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 이 작품에는 잃어버리거나 잊혀진 어휘들이 많이 구사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어휘들이 제구실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런 뜻에서 이 작가는 문체주의자라고 볼 수 없다. 다채로운 어휘가 등장하고 있는 그의 문체는 미학적으로 새로운 경험을 창출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소설이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내용에 신경을 집중하도록 만든다.
다양한 어휘구사는 그것 자체가 당시의 언어와 동떨어진 느낌을 주기 때문에 소설의 주제를 파악하는데 수수께끼와 같은 구실을 해서 소설의 내용에 정신을 집중하게 한다. 이점은 물론 작가의 의도와 정반대의 결론일 것이다.
④마지막으로 『천둥소리』의 속뜻은 무엇인가? - 이 작품의 천둥소리는 기상의 변화와 같은 문적 변화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인 신길녀의 신상에 큰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울리는 심리적 충격의 천둥소리다. 마음이 억장같이 내려앉는 소리다. 굳이 곰곰이 따지지 않아도 역사적 격변이 있을 때마다 마른 하늘에 울리는 천둥소리를 우리 모두가 듣곤 그 때마다 화들짝 놀랐던 경험을 생각할 수 있다.
김주영의 『천둥소리』는 그러한 심리적 붕괴의 경험을 다시 상기시켜 예고도 없이 울리는 천둥소리의 속뜻을 밝히고자 한 작품이다. 놀라지 않으려고 해도 들을 때마다 충격을 받는 「천둥소리」의 속뜻을 살피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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