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지진 무서워 어디 살겠나, 제천 아들네라도 가야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지진을 피해 충북 제천의 아들 집으로 가야겠어요.” 20일 오전 9시30분쯤 경북 경주시 내남면 덕천1리 마을 공동 빨래터 앞. 김옥선(67·여)씨가 불안한 얼굴을 하고 “지진이 무서워서 더는 마을에 못 있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덕천1리는 19일 오후 8시33분 발생한 규모 4.5 여진 발생지(덕천리 산 99-6)와 1㎞도 떨어지지 않은 마을이다. 앞서 12일 발생한 규모 5.8 지진의 진앙에선 3.9㎞밖에 안 떨어져 있다. 400여 차례 지진과 여진을 240명의 덕천1리 마을 주민은 계속 겪고 있는 셈이다.

기사 이미지

지진과 여진으로 피해를 본 경주시 황남동의 한옥 음식점 지붕에서 20일 오후 보수업체 직원들이 기왓장 교체 작업을 하고 있다(왼쪽). 음식점 주인 이모씨는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경주를 찾는 관광객을 맞이할 수 없다고 생각해 재난지역 선포와 관계없이 먼저 개인 비용으로 수리를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경주=프리랜서 공정식]

김씨의 한옥은 지붕 기왓장이 부서져 있었다. 하늘색 대문 옆 콘크리트 담도 균열투성이였다. 손으로 담을 만지자 벽돌 3개 크기만 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바닥으로 툭 하고 떨어졌다. 김씨는 “균열만 나 있었는데 19일 여진으로 아예 부서져버렸다. 쿵 소리가 나고 우르릉 진동이 오더니 지붕도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더 내려앉았다”고 했다.

규모 4.5 여진에 목욕탕 굴뚝 파손
기와 부서지고 콘크리트 담장 균열
경주지역 43개 초등교는 정상수업
울산에선 교육부가 학교 현장점검

마을회관 앞에서 만난 이춘화(78)씨는 “또 지진이 오느냐”고 기자에게 되물었다. 그는 “여진 공포에 비닐하우스에서 밤을 보내고 오전 6시쯤 나왔다. 마을에서 지대가 낮은 곳이 비닐하우스뿐인데, 또 지진이 나면 어쩌냐”고 말했다. 이씨 옆에 있던 서순화(67·여)씨는 “지난밤 여진이 더 발생할까 불안해 두통약을 먹어가며 밤을 보냈다”고 말을 보탰다. 앞서 12일 규모 5.8 지진의 진앙 마을인 부지리 주민들은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피곤한 표정으로 유모차를 밀고 가던 한 80대 주민은 “큰 지진이 또 나면 어쩌나. 어쩌나” 하며 손을 부르르 떨었다.

기사 이미지

같은 날 건설업체 직원들이 여진으로 파손된 경주시 동천동의 한 대중목욕탕 굴뚝 상단부를 해체하고 있다. [경주=프리랜서 공정식]

규모 4.5 여진은 경주 도심에도 피해를 남겼다. 이날 오전 11시쯤 찾은 경주시 동천동 한 목욕탕 앞. 대형 크레인이 높이 15m짜리 목욕탕 굴뚝 끝부분을 뜯어내고 있었다. 지진으로 균열이 생긴 굴뚝 끝이 여진에 더 파손됐기 때문이다. 목욕탕 주인 최모(47)씨는 “파손된 굴뚝 상층부에서 가루가 떨어지는 등 위험해서 뜯어내는 것”이라며 “지진을 탓할 수밖에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동부동의 한 주택은 여진으로 2층 난간 일부가 파손됐고 담까지 기울어 소방당국이 안전선을 둘렀다. 기와에 천막을 덮는 등 보강을 하며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던 황남동 한옥지구도 강한 여진이 훑고 갔다. 이날 정오쯤 찾은 황남동의 한 경로당. 출입문 앞 벽에 1m 정도 되는 균열이 보였다. 엄지손가락이 들어갈 만큼 깊었다. 김모(80·여)씨는 “균열이 여진 충격으로 더 커지고 깊어진 것 같다. 불안하고 무서워서 옷을 입고 잔다”고 말했다. 19일 여진은 석굴암 종무소 외벽에도 6개의 균열을 만들었다.

이렇게 강한 여진이 훑고 갔지만 경주 지역 43개 초교는 이날 모두 정상 수업을 했다. 지난 12일 두 차례 강진으로 학교 곳곳에 균열이 가 있는 상태로다. 실제 지난 19일 둘러본 경주 지역 일부 초등학교 교실엔 커다란 균열이 있었고 한 학교 2층 화장실 천장이 내려앉은 모습도 확인됐다. 학생들이 밥을 먹는 H초교 급식소 외벽은 지진 충격으로 길이 1m 이상 균열이 나 있었다. 경주시 성건동에서 만난 최환호(47)씨는 “19일 강한 여진이 느껴져 집에 있는 게 불안해 차를 타고 가족들과 공원이나 공터를 돌아다녔다. 이제 그만 지진 공포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말했다.

울산도 지진 피해가 속출했다. 특히 경주의 진앙과 10㎞가량 떨어진 울주군 두서면 내와리의 피해가 컸다. 내와리 문현달 이장은 “12일 강진에 19일 여진까지 겪으면서 외와마을의 경우 180여 가구 중 상당수가 담장 균열, 천장 붕괴 등의 피해를 봤다”고 말했다.

울주군에 따르면 19일 여진으로 두서면을 포함해 울주군 전체 지진 피해 접수 건수는 781건이다. 김영국 울주군 재난팀 계장은 “추산 피해액이 15억원”이라며 “경주와 바로 인접한 만큼 19일 국민안전처에 울산시를 통해 울주군만 특별재난지역 선포를 따로 신청한 상태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① 보물 678호 청도 운문사 삼층석탑 균열
② ‘생존 배낭’ 챙겨 놓고, 진동 감지 앱 내려받고



20일 피해가 심한 울주군과 울산 북구 지역 10개 학교에서는 교육부 주관 민관합동점검이 열리기도 했다. 첫 점검 대상은 학부모들의 요청으로 19~20일 휴교한 M초교. 학교 2층 복도 벽면엔 천장부터 바닥까지 손가락 굵기의 균열이 있었다. 점검단은 “건물을 지탱하는 기둥은 문제가 없고 기둥 사이 쌓은 벽돌에 금이 간 것”이라며 “다만 시멘트 부스러기가 떨어지지 않게 안전조치가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울산 지역 학교에 대한 안전점검은 21일까지 실시된다.

경주·울산=김윤호·최은경 기자 youknow@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