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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태형의 음악이 있는 아침] 차가운 샘물 같은 알레그리 ‘미제레레’

중앙일보

입력

‘미제레레’.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란 뜻입니다.

라틴어로 번역된 성서의 시편 전문 중 ‘미제레레 메이 데우스(miserere mei Deus)’에서 왔습니다.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가 그레고리오 알레그리(Gregorio Allegri, 1582~1652)의 ‘미제레레’ 입니다.

원래 바티칸의 시스티나 대성당에 전해지던 신비로운 음악이었습니다.

시스티나 성당에서는 이 곡의 독점권을 유지하기 위해 복사를 금하고 악보를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1770년까지는 이 음악을 들으려면 바티칸까지 가야했습니다.

14세의 모차르트는 이 곡을 듣기 위해 시스티나 성당을 방문합니다.

모차르트는 공연을 한 번 듣고 기억으로 정확하게 악보에 옮겼습니다.

10여분이나 되는 긴 곡인데, 이걸 모차르트는 단지 단 한번 듣고 그대로 채보한 거죠.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알려주는 일화입니다.

이 곡은 누구라도 거부감 없이 경건하게 음악에 빠져들도록 하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티모시 브라운이 지휘하는 케임브리지 클레어 칼리지 합창단은 원곡의 보이 소프라노 파트를 여성 소프라노를 써서 해석했습니다.

비브라토를 절제한 목소리가 중세의 신비감을 길어 올립니다.

여성 소프라노의 청아한 하이 C음의 아름다움은 차가운 샘물처럼 정갈합니다. 수수께끼를 품은 듯 신비롭습니다.

류태형 음악칼럼니스트·객원기자 mozar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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