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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 여중생 정호영 “연경 언니처럼 크고 싶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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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여중생의 키가 1m89㎝라니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직접 옆에 서보니 한국 여성 평균신장(1m62㎝)인 기자가 목을 뒤로 한껏 젖히고 올려다봐야 할 정도였다. 역대 최연소의 나이에 여자배구 국가대표로 뽑힌 정호영(15·광주체육중3)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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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배구 사상 최연소(15세) 국가대표가 된 여중생 정호영. 키가 무려 1m89㎝다. 정호영은 “키가 커서 일상 생활에선 스트레스를 받지만 배구선수로선 매우 만족한다”며 껄껄 웃었다. [진천=박종근 기자]

정호영은 또래 선수들 사이에선 거인으로 불린다. 키가 너무 커서 기린·전봇대 등의 별명도 얻었다. 국내 성인 여자배구 선수들과 비교해도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큰 키다. 더 놀라운 건 그가 여자 대표팀에서 가장 나이가 어리다는 것이다. 만 15세인 정호영은 14일 베트남에서 개막하는 제5회 아시아배구연맹(AVC)컵을 앞두고 지난 2일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2001년 8월 23일생인 정호영은 만 15세에 태극마크를 달아 국내 여자배구 역사상 최연소 국가대표 선수가 됐다. 지난 6월 29일 청소년 국가대표로 발탁된 지 2개월여 만에 성인 대표팀 태극마크를 단 것이다.

15세 최연소 대표로 AVC컵 출전
2020년 도쿄 올림픽 꿈꾸며 구슬땀
“열심히 갈고 닦아서 큰나무 될 것”

베트남으로 출국하기 앞서 지난 7일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만난 정호영은 “대표팀 명단에 ‘정호영’이란 이름이 있는 걸 보고 동명이인이 뽑힌 줄 알았다. 아직 중학생인 내가 성인 대표팀에 뽑힐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며 “대표팀에 뽑힌 것만으로도 가문의 영광”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리우 올림픽에서 여자배구는 8강에 그쳤다. 대한배구협회가 여자배구대표팀에 충분한 지원을 하지 못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팬들의 비난을 받았다. 이에 배구협회는 대표팀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하며 일찌감치 2020년 도쿄 올림픽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이 프로젝트 중 하나가 여자배구 유망주들을 조기에 국가대표팀에 합류시킨 뒤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정호영의 포지션은 라이트 공격수. 이제 겨우 배구 입문 3년 차다. 특급 유망주로 꼽히지만 서브·리시브·스파이크·블로킹 등 기본 기술은 여전히 부족한 편이다. 하지만 신체조건 만큼은 세계적인 배구 스타 김연경(28·페네르바체) 못지 않다. 키 1m92㎝, 몸무게 73㎏인 김연경의 서전트(제자리) 점프 기록은 60㎝다. 키 1m89㎝, 몸무게 63㎏ 인 정호영의 점프는 54㎝ 정도다.

키가 큰데다 점프력도 좋아서 중학교 대회에선 정호영의 적수가 없다. 네트 앞에 가만히 서서 손만 들어도 상대 공격을 다 막아낸다. 체공 시간도 긴 편이다. 정호영은 “키가 계속 자라고 있다. 제자리 점프를 잘하는 건 아빠를 닮았다”고 말했다.

정호영의 가족은 모두 운동선수 출신이다. 아버지 정수연(50)씨는 중학교 때까지 농구를 했다. 키는 1m82㎝, 제자리 점프는 1m 가까이 나왔다고 한다. 키가 1m80㎝인 어머니 이윤정(43)씨는 1993~94년 여자배구 실업팀 미도파에서 활약했다. 초등학교 6학년인 여동생 정소율(12·1m64㎝)은 광주 치평초에서 배구를 하고 있다.

정호영은 “운동신경은 동생이 훨씬 좋다. 나는 움직이는 걸 싫어하고 게으른 편이다. 초등학교 체육시간 때는 아프다고 빠지기 일쑤였다”고 했다. 하지만 정호영은 배구공을 잡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이 끝나갈 무렵 키가 쑥쑥 자랐다. 1m67㎝이던 키가 두 달 새 1m82㎝로 15㎝나 자랐다. 어머니 정씨는 “큰 키를 이용해 배구를 해보자”고 권유했다. 일반 중학교에 진학했던 정호영은 본격적으로 운동을 하기 위해 광주 체육중으로 전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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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갈 길이 멀다. 그는 다른 선수보다 3~4년 늦은 13세에 배구부에 들어갔다. 무엇보다도 기초 체력이 부족하다. 정호영은 “키가 크는 속도를 근육이 따라가지 못해서 유연성이 떨어진다. 다리가 길어서 단거리는 빠르지만 지구력이 떨어져 오래 달리기는 못한다”고 털어놨다. 배구공을 제대로 만지기 시작한 건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스파이크를 때린 건 올해부터다. 키가 자라고 있기 때문에 웨이트 트레이닝도 하지 않는다.

김철용 대표팀 감독은 “키가 갑자기 자라서 연골 부위가 약한 편이다. 체격조건이 훌륭하기 때문에 차근차근 기술을 가르치고 경험을 쌓게 한다면 ‘제2의 김연경’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호영의 롤모델도 김연경이다. 그는 “연경 언니는 공격과 수비를 모두 잘하는 멀티 플레이어다. 연경 언니와 같은 코트에서 숨만 쉬어도 행복할 것 같다”며 “아직 나는 ‘꿈나무’지만 4년 후엔 ‘큰나무’가 되겠다. 열심히 갈고 닦아서 대표팀에 보탬이 되는 선수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총 8개국이 참가하는 AVC컵은 14일부터 20일까지 베트남에서 열린다. 2014년 준우승팀인 한국은 중국·일본·카자흐스탄과 함께 B조에 편성됐다. A조에는 베트남·태국·대만·이란이 포함됐다. 각 조 상위 2개 팀이 4강에 진출한다.

진천=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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