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떠나는 「인술반세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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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인술 반세기」-. 명동성모병원이 명동을 떠난다. 서울 한복판 명동에 자리했던 성모병원 (원장 이용각)이 서울의 새도심 여의도에 더 크고 좋은 시설의 병원건물을 새로 지어 50년만에 이사간다.
「5일 명동서 외래환자 진료마감, 7일 입원환자 여의도이송, 10일 이사작업 완료, 12일 여의도개원」이 일정.
실제로 이사작업은 지난달 21일부터 「20일작전」으로 시작돼 대형트럭 15대가 동원돼 매일같이 짐을실어 나르고 있다. 각종 비품·집기·서류등 짐만 1천여대분. 그동안 치료받은 환자들의 진료기록 카드만대형트럭 두 트럭분이된다.
사람도 1천2백여명이 동원되고 이사비용이 5억여원. 무엇보다 신경을 써야하는것은 72명의 입원환자수송. 병원측은 7대의 앰뷸런스를 동원, 사전 예행연습까지 실시하는등 만반의 준비다.
『옛 명동은 차분하고 낭만과 인정이 있었지만 이젠 소음과 매연, 교통혼잡으로 병원자리로서는 적합하지가 않게 됐읍니다. 보다 쾌적한 환경의 한강변으로 옮겨가면 환자치료에도 더 도움이 되겠지요. 그러나 이곳 명동은 우리나라 의학발전에 여러개의 이정표를 세운 명소로 길이 기억될 것입니다』
61년 현재의 명동8층 병원건물이 신축, 개원할때부터 병원에 몸담아 25년동안 병원을 지켜온 기획실장 박용휘박사(방사선과장)의 자랑스런 회고처럼 명동성모병원은 지난 반세기 많은 기록을 세웠다.
국내최초의 안구은행 설립·신장이식수술·골수이식수술등이 그중에도 기념비적 기록.
69년3월25일 성모병원외과 이용각교수등 40명의 의료진은 만성신장질환자인 정모씨(33)에게 어머니 김모씨(59)의 왼쪽콩밭을 이식하는데 최초 성공, 『우리나라 의학계의 경사』라는 찬사를 들었다.
83년4월에는 혈관종양학과 연구팀이 급성백혈병을 앓고있는 김모씨(26)에게 19살난 동생의 골수이식에 성공함으로써 미국·유럽·일본에 이어 우리나라에서도 난치병인 백혈병을 근치할수 있는 길을 트기도 했다.
지난 4월까지 성모병원이 시술한 신장이식은 모두 2백건.
중앙안구 은행은 이보다 앞서 67년4월 설립됐다. 지금까지 5백여명의 시력장애자가 이곳서 광명을 되찾았다.
이 안구은행의 제1호 헌안은 79년6월 작고한 윤형중신부(당시 76세).
윤신부는 안구은행이 개설되자 『눈의 기증은 죽은사람을 욕되게 하는 것이아니라 세상에 의롭고 고귀한 빛을 주는 길』이라며 두눈을 안구은행에 기증, 두 실명인에게 빛을 안겨주었다.
82년8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김당사건의 주범 박철웅도 이 안구은행을 통해 실명인에게 빛을 주고 속세의 원죄를 빌었다.
성모병원은 이같은 뛰어난 의료술과 시설때문에 정부요인·고관·재벌을 비롯, 많은 연예인이 단골 고객.
전국무총리 J씨, 전장관M씨, 전공화당간부 J씨등은 소문난 20년고객.
명동 성모병원이 문을 연것은 해방10년전인 35년7월.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교구설립 1백주년기념사업으로 명동성당옆에 있던 일본인경영 무라가미(촌신)병원을 인수, 개원했다. 초대법원장은 고 박병래박사.
병상22개의 초라한 시설이었지만 도심의 잇점과 천주교신앙을 기초로한 건실한 경영, 믿음을 주는 인술로 명성을 쌓았다.
의료시설이 태부족이던 해방전후까지 서울대병원·세브란스병원등과 함께 서울의 손꼽히는 의료기관이었고 6·25때는 주변이 폭격을 당한 가운데 명동성당과 이병원만 화를 면해 적치하 3개월동안 한때 인민군진료소로 사용되기도했다.
성모병원이 초현대식 8층병원으로 오늘의 모습을 갖춘것이 25년전인 61년12월. 기라성같은 명의들이 성모병원의 명성을 더욱 높였다. ▲김희규박사(성바오로병원·복부외과) ▲전종휘박사(부산인제대·내과) ▲안치열교수(전 경희대총장·방사선과) ▲민병근박사(정신과· 전 중앙대부총장) ▲서석조교수(내과·순천향병원이사장) 등 헤아릴수없을정도.
아웅산 사건으로 순국한 대통령주치의 민병석박사도 성모병원이 배출한 인물.
여의도 새병원은 현재의 명동병원(지상8층, 3백32병상) 보다 2배이상 규모가큰 지상13층건물에 7백20병상.
병원이 옮겨가면 현재의 명동건물은 연말까지 내부수리를 한뒤 1∼2층은 증권회사등에 사무실로 임대하고 3∼8층은 곳곳에 흩어져있는 천주교산하 80여단체들이 입주, 사무실로 쓸계획. <정순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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