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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김정호 된 ‘차줌마’…“초상화 보면 두 사람 꼭 닮아” 영화 ‘고산자’ 주연 차승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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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로 분한 차승원. 그는 김정호의 발자취를 좇아 9개월간 10만 여km를 누볐다. [사진 CJ 엔터테인먼트]

‘삼시세끼’의 ‘차줌마’ 차승원(46·사진)이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7일 개봉한 강우석 감독의 스무 번째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이하 ‘고산자’)에서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지리학자 김정호(1804~1866 추정) 역을 맡으면서다. 담담한 호연으로 평가 받은 가족 영화 ‘아들’, 톱스타 이미지를 코믹하게 비튼 드라마 ‘최고의 사랑’, 광해군 역으로 고요한 카리스마를 발휘한 사극 ‘화정(華政)’ 등 장르를 넘나드는 그의 유연한 연기력을 떠올려 보면, 차승원은 그저 ‘차줌마’로 남기엔 아까운 배우였다.

영화 ‘고산자’ 주연 차승원
백두산부터 마라도까지 대장정
“틀에 박힌 사극 하고 싶지 않아
연기 강박 버리고 현장서 부딪혀?

강 감독의 연출작에 출연한 건 처음이지만, 제작자와 배우로 두사람은 15년 지기다. 강 감독은 “차승원은 순발력이 뛰어난 배우다. 내가 제작한 영화에서 후배 감독들이 그를 자주 캐스팅하지 않았다면, 진작에 같이 작품을 했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박범신 동명 소설이 원작인 ‘고산자’는 지도에 잘못 표시된 점 하나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했던 시절, 팔도강산을 목판 지도에 새겨 만백성과 나누려 했던 김정호의 전기 영화다. “고산자(古山子·김정호의 호)를 세종대왕, 충무공 이순신의 반열에 올려 달라”는 박범신의 청에 따라, 강 감독은 원작에 담긴 지도꾼의 고행과 함께 관객이 즐길 만한 해학을 영화 곳곳에 불어넣었다.

실존 인물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김정호의 장인정신과 유머를 넘치지 않게 넘나든 차승원의 연기는 그가 “캐스팅 1순위였다”는 강 감독의 말을 절로 수긍하게 만든다. 박범신이 자신의 또다른 소설 『은교』의 영화화가 결정됐을 때 주인공 노(老)시인 역으로 제일 먼저 떠올린 배우가 차승원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재미있는 우연이다.

“틀에 박힌 사극 연기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던” 차승원 역시 양반이 아닌 탓에 역사적 기록이 거의 남지 않은 김정호란 인물의 여백에 반했다. ‘옛 산을 닮은 자’란 뜻의 호를 지닌 희대의 방랑자는 그의 연기 스타일까지 바꿔 놨다. “예전엔 매 장면을 디테일하게 준비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인위적으로 ‘애쓰는’ 게 싫어졌다. 현장에서 그냥 부딪히다보면 내가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것들이 나온다. 강박을 버리고 나니, 연기가 훨씬 자유로워졌다.” 차승원의 말이다.

대신 카메라 앞에 선 순간만큼은 더 철저히 집중했다. 김정호의 발자취를 좇아 장장 9개월간 백두산부터 마라도까지 전국 10만6240㎞의 촬영 대장정에 나섰다. 바뀌는 하늘 빛깔 때문에 꼭두 새벽 한두 컷 찍고 철수한 적도 허다했다. 그럼에도 “차승원은 잠시 실루엣만 스쳐 지나가는 장면도 대역을 쓰지 않고 자동차로 대여섯 시간 거리를 마다치 않고 달려왔다”고 최상호 촬영감독은 귀띔했다.

개봉 첫날 3만 명 남짓한 관객 동원에 그치며 엇갈린 평가를 받고 있지만 차승원은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내 능력을 직시하면 좋은 것들은 여러 형태로 찾아온다”고 말했다. 최근 몇 년간 아들의 친부가 소송을 내는 등 많은 일을 겪으며 보여준 의연한 대처가 인상적이었다고 하자, 그는 가만히 답했다. “상대방이 싫어할 만한 행동을 하지 않는 게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는 방식이다. 남들이 행복해야 나한테도 돌아오니까. 만약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게 된다면 내가 잘못 살고 있다는 얘기겠지. 그렇게 되면 배우 일을 훌훌 털어버리고 가야겠다는 생각도 한다.”

그는 “정해진 차기작은 없지만, 외계인 같은 역할도 재미있을 것 같다”고도 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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