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겪은 농림장관 인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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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 들어 장관이 처음 바뀌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우여곡절 끝에 허상만(許祥萬)순천대 교수를 농림부 장관에 임명했다.

정찬용(鄭燦龍)청와대 인사보좌관은 許교수가 농민을 상대로 한 개방화 설득에 적임자라고 말했다. 그가 순천 경실련 등의 시민단체 활동에 참여했다는 것이 근거다.

또 "아이디어와 조직관리 능력을 겸비했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새만금 사업.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등의 현안을 잘 풀어낼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호남 출신이란 점을 고려했다는 것도 부인하지 않았다. 문답에선 새만금 사업.부안 핵폐기물 처리장 문제로 동요하는 호남 민심을 다독이기 위한 안배가 아니냐는 질문이 나왔다. 鄭보좌관은 "그런 고려가 있지 않았겠느냐. 농업과 밀접히 관련된 호남은 중요한 농림부 장관 배출 지역"이라고 말했다.

당초 청와대 인사위가 1순위 후보로 盧대통령에게 추천했던 사람은 민병채(閔丙采)전 양평군수다. 그는 고건(高建)총리의 반대로 낙마했다.

盧대통령은 지난 19일 대선 당시 농업특보를 지낸 이봉수 김해지구당 위원장을 통해 閔전군수를 청와대로 불러 직접 면접을 했다고 한다. 그 후 청와대는 閔전군수를 사실상 내정했다. 23일에는 발표까지 예고했다.

그러나 각료 제청권을 가진 高총리가 이의를 제기했다. 이 과정에 대해 盧대통령은 24일 許장관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장관 자리가 다른 데로 가다가 총리가 다시 한번 논의해 보자고 해 결과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高총리는 이의 제기 후 청와대 인사위 멤버들과 함께 閔전군수.許교수.박상우(朴相禹)전 농림부 차관을 대상으로 심야 인터뷰를 해 許장관을 제청했다.

이로써 상황은 종료됐다. 그러나 문제점은 남았다. 청와대는 총리 제청권을 무시한 채 특정인을 사실상 내정했다가 탈락 후보에게 상처를 줬다. 鄭보좌관은 "인선과 관련해 세번쯤 高총리를 찾아가 만났고 통화도 여러번 하는 등 긴밀히 연락했다"고 말했지만 당초 추천 때 총리의 제청을 받았더라면 사람이 바뀌는 해프닝은 없었을 것이다.

적절한 인선이었는지도 의문이다. 당초 청와대는 뚝심과 비전, 국제 협상력과 농민에 대한 연고를 요건으로 제시했다. 許교수가 이 같은 능력을 고루 갖췄는지는 앞으로 검증이 필요할 것 같다.

국제 협상력과 관련해 鄭보좌관은 "許교수가 일본에서 2~3년간 교환교수를 했고 해외에 많은 지인이 있으나, 閔전군수는 군수만 해 국제 협상력이 다소 걱정스러운 게 추천자가 바뀐 사유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날 그는 "閔전군수는 회사를 운영하며 외국 기업과 많은 교섭을 한 경력이 있어 국제 협상에 부족함이 없다"고 했다.

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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