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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대란 급한 불은 껐지만…“최소 2000억 더 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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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 회장

한진그룹이 6일 긴급지원대책을 내놓으면서 한진해운 생사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조양호 회장이 사재 출연이란 카드까지 꺼냈지만 한진해운이 기사회생할 가능성은 여전히 크지 않다.

한진해운 재가동하기 위해선
하역·내륙운송비 6500억 필요
1000억 지원으론 회생 힘들어

한진해운의 긴급지원안과 더불어 정부·채권단이 힘을 합치면 일단 멈춰 선 선박을 움직이고 화물 서비스를 재개할 수 있다. 한진그룹은 경영권을 포기하더라도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조기 졸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한진그룹이 지난 5일 채권단에 제안했다가 퇴짜 맞은 지원안도 이런 구상이 전제다.

일단 제도적으로는 가능한 일이다. 채무자회생법 287조는 법정관리 절차를 폐지할 수 있는 요건으로 ▶즉시 파산 ▶회생계획안 미제출 ▶채권 전액 변제 등 3가지를 규정하고 있다. 다만 현실성은 크지 않다. 김창준(한국해법학회 고문) 법무법인 세경 대표변호사는 “법원이 인정할 수 있는 정도의 채무를 갚는다면 법정관리 절차 폐지도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며 “다만 이 조문에 따라 법정관리를 실제 폐지한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법정관리 도중이라도 금융권에서 운영자금을 수혈해 명맥을 유지할 수는 있다. 실제 STX팬오션(현 팬오션)은 법정관리 중 KDB산업은행으로부터 2000억원을 대출받았다. 법정관리 중 지원한 자금은 기존 채권보다 먼저 상환(우선변제)받을 수 있어 금융권도 부담이 덜하다.

이렇게 투입된 자금으로 일단 서비스를 개시하면 생존 가능성이 커진다. 영업이 안정화되면 인수를 원하는 기업이 등장할 수도 있다. 하림그룹은 자금 수혈로 영업이익률(12.6%)을 크게 끌어올린 STX팬오션을 지난해 6월 1조80억원에 인수했다.

하지만 한진해운과 STX팬오션은 다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영석 한국해운물류학회 고문은 “부정기 벌크선 위주였던 STX팬오션은 피해 화주 규모가 크지 않아 운영자금도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며 “반면 전 세계 항구를 정기적으로 기항해야 하는 정기 컨테이너 선사인 한진해운은 더 많은 운영자금이 필요하다”고 차이점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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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그룹이 지원한 자금(1000억원)도 물류대란을 해소하기엔 다소 벅찬 금액이다. 양창호 한국해양수산개발원장은 “한진해운을 재가동하는 데 필요한 하역비·내륙운송비는 6500억원으로 추산된다. 이 중 일부를 향후 상환한다고 해도 최소 3000억원 정도는 투입해야 정상적으로 하역이나 내륙운송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적게 잡아도 2000억원이 더 필요하다는 얘기다.

한진그룹은 유독 박근혜 정부 들어 악재가 많았다. 지난해 인천 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을 준비하며 한진그룹과 미래창조과학부는 각자의 역할을 설계했다. 출범이 4개월 정도 미뤄지긴 했지만 합의점을 찾아 절충하고 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당시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이 한진그룹을 강하게 비판했다. 투자금이나 운영방침에서 불협화음이 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조 회장 숙원사업으로 알려진 한국형전투기(KF-X) 개발사업과 경복궁 옆 7성급 한옥호텔 건립도 이번 정권에서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조 회장은 또 2018 평창 겨울올림픽을 유치하는 데 공을 세웠지만 지난 5월 갑자기 올림픽 조직위원장직에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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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문희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의 처남 취업청탁설이 불거졌을 때 조 회장은 검찰로부터 참고인 조사를 받아야 했다. 이 사건은 무혐의 처분이 났지만 조사 과정에서 본사·사무실이 압수수색을 당했다.

조 회장의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으로 물의를 빚었고, 대한항공 부기장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게시글에 ‘비상시에만 조종사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댓글을 조 회장이 달았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문희철·김민상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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