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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미의 취향저격 상하이] ⑥ 가을 산책의 묘미, 옛 프랑스 조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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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날 산책하기 좋은 상하이 옛 프랑스 조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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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사이 계절이 바뀌었다. 느닷없이 찾아온 가을 하늘이 여름내 눅져 있던 역마살을 부추긴다. 이럴 땐 어디든 나가서 걸어야 한다. 낯선 곳을 두발로 걷는 묘미야말로 가을 여행이 주는 최고의 행복이다.

상하이의 봄, 가을 날씨는 한국과 비슷하다. 일교차도 심하고, 비도 자주 오지만, 쾌청하게 개인 하늘과 선선한 기온 덕에 여행하기 최적이다. 이맘때쯤 상하이에서 가장 걷기 좋은 길은 ‘옛 프랑스 조계’다. 과거 프랑스의 조계지였던 이곳은 시끄러운 번화가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어 고즈넉한 정취가 물씬 풍긴다.

소박한 카페 골목 우캉팅. ‘퍼거슨래인’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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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히 알려진대로 난징조약 이후 강제 개항된 상하이에는 영국, 미국, 프랑스 등 다양한 국가의 조계지가 있었다. 이중 프랑스 조계지는 면적이 6.6km²로 가장 넓고, 가장 부유한 외국인 거주지였다. 프랑스 조계 총독부(上海法租界公董局)는 고국을 그리워하는 프랑스인들을 위해 거리마다 파리 샹젤리제를 떠올리게 하는 플라타너스 나무를 빼곡히 심었고, 프랑스식 정원이 있는 공원(復興公園)도 만들었다. 1920년대에는 유럽식 별장 주택이 많이 지어져 외국인과 중국의 정치, 문화계 인사들이 대부분 이 동네에 거주했다. 프랑스조계는 1849년 처음 설정된 이후 약 100년만인 1943년에서야 중국에 반환됐다.

예쁜 골목 카페를 찾는다면 동핑루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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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미지 않은 듯 하면서도 세련된 분위기 탓일까. 행정구역 명칭은 ‘루완(盧灣區)’, ‘쉬후이(徐匯區)’로 바뀌었지만 이곳은 지금도 옛 프랑스 조계로 불린다. 이 동네에서 마주치는 사람 중  3분의 1은 외국인이라 상하이 속 유럽이라는 말이 금세 피부로 와닿는다. 도로는 대부분 좁고 한적한데, 일방통행로라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면 차량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길 양옆에는 웬만한 건물 옥상을 훌쩍 뛰어 넘는 플라타너스 나무가 우거져 연두빛 터널을 만든다. 플라타너스 그늘 사이를 걷다가 우연히 마주치는 풍경도 하나하나 사랑스럽다. 고풍스런 별장 주택, 듬성듬성 자리 잡은 작은 카페와 프렌치 레스토랑 앞에선 나도 모르게 발길을 멈추고 담장 너머를 기웃거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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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난루에는 중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역대 총리인 ‘저우언라이’, 중국 혁명의 아버지 ‘쑨원’의 옛 거처가 있다.

옛 프랑스 조계에서 가장 이색적인 거리는 쓰난루(思南路)다. 이 거리를 따라 쑨원(孫文), 저우언라이(周恩來), 메이란팡(梅蘭芳) 등 상하이 명사들의 옛 거처가 자리 잡고 있어 ‘명사의 거리’라고도 불린다. 중국 혁명의 아버지라 불리는 쑨원은 쓰난루 옛집(孫中山故居紀念館)에서 1918년부터 1925년까지 살았다. 쑨원은 이곳에서 삼민주의 사상을 구체화하고, 『쑨원학설(孫文學說)』 등 주요 저작을 남겼다. 1922년에는 국민당 대표로서 공산당 대표 리다자오(李大釗)를 만나 국공 합작의 토대를 마련했고, 중국 군벌에 대한 토벌 선언인 ‘북상선언(北上宣言)’도 이 저택에서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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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프랑스 조계에서는 상하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흔히 만날 수 있다.

여기서 남쪽으로 240m쯤 걸으면 중화인민공화국 초대 총리를 지낸 저우언라이의 공관(周公館)이 있다. 1946년 중국의 긴박한 역사적 국면이 남아있는 곳이다. 항일 전쟁이 끝난 후 국민당과 공산당은 표면적으론 평화협정을 맺었지만 사실상 팽팽히 대치중이었다. 상하이는 당시 국민당의 본거지였는데, 저우언라이가 공산당의 협상 대표로 상하이에 올 때마다 묵었던  곳이 바로 이 저택이다. 간판은 저우언라이의 공관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공산당의 상하이 지부로 국민당의 동향을 파악하는 업무를 했고, 국민당 역시 공관 맞은편 건물(현재 병원 건물)에서 몰래 저우언라이를 감시했다. 30년간 총리를 지낸 저우언라이는 청렴하고 인간적인 성품,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탁월한 정치적 수완으로 지금도 중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총리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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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난맨션은 쓰난루에 자리한 복합상업단지다. 신톈디보다 여유롭고 운치있다.

쓰난루의 중심에는 쓰난맨션이라는 복합 상업 단지도 있다. 오래된 주택을 상업 시설로 개조한 점이 신톈디와 비슷하지만, 훨씬 한적하고 고급스럽다. 주말에는 플리마켓이나 소규모 공연 등 문화행사도 자주 열린다. 이밖에 조용한 골목에 자리한 예쁜 카페나 레스토랑, 바를 찾는다면 동핑루 거리(東平路)와 타오쟝루 거리(桃江路)를 추천한다. 옛 프랑스 조계에서 맛집 밀도가 가장 높은 골목으로 두 거리가 한 블록 차이다.

옛 프랑스 조계에서는 상하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흔히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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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아지트처럼 편안한 분위기의 우캉딩(武康庭) 역시 옛 프랑스 조계에서 주목 받는 곳이다. 옛 명칭을 그대로 사용해 퍼거슨 래인(Ferguson Lane)이라고도 하는데 우캉루(武康路) 376번지와 374번지 일대에 조성된 소박한 카페 골목이다. 각각 프랑스인 제빵사가 운영하는 빵집 페어린(Farine), 스페인셰프가 운영하는 타파스(Tapas) 레스토랑 아줄(Azul)이 유명하다. 골목 안쪽에는 상하이의 대표적인 사설 갤러리 중 하나인 레오 갤러리(Leo Gallery), 라이프스타일숍 쎄씨봉(C’est Si Bon) 등이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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