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와 엔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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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기묘한 대치다.
36년전 한국동란이 터지자 일본의 「요시다」(길 전무)수상은 그 근엄한 얼굴에 미소를 감추지 못하며 『덴유』라고 했다.
나라가 유린당하고 무수한 인명이 죽어 가는 전화를 보며 『하늘의 도움』(천우)이라니, 기막힐 노릇이다. 일본에서조차도 그런 빈축이 있자 「요시다」는 금방 『한천의 대자우』 라고 말을 고쳤지만, 일본이 내심 얼마나 반갑고 즐거웠으면 그런 실언(?)을 했겠는가.
물론 경우는 다르지만 우리는 지금 일본의 「엔고」로 「한천의 소나기」쯤 되는 해갈을 보고 있다.
다시 시계바늘을 36년전으로 돌려보자. 일본의 권위 경제지 프레지던트 80년8월호는 특집 「종전후」연구- 『부흥에서 고도성장에』라는 논문을 통해 일본이 한국동란과 함께 무려 네 차례나 특수(특수수요)붐을 맞았던 얘기를 소개했다.
제1기. 동란직후 트럭, 철도 화물차, 기관차, 레일, 건전지, 드럼통 등 무려 4천96만 달러 어치의 주문이 일본 기업에 쏟아져 들어왔다.
제2기.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해갈 무렵 일본은 담요, 군대 막사자재, 철조망, 기관차, 트럭, 교량용 철재 등 4천7백26만 달러 어치의 물건을 만들어내야 했다.
제3기. 중공 의용군이 남하하자 슬리핑 백, 담요, 각종 방한복, 철조망, 막사 자재 (철제 조립)등 주문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제4기. 휴전회담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특수 붐은 계속되었다. 트럭 2천4백56대(7백73만 달러), 화차 43만 달러 어치분, 소형 선박, 자동차 부품, 드럼통 등 3백12만 달러 어치, 연탄1백69만 달러 어치, 시멘트, 생고무 등.
동난 직전 일본은 헤어날길 없는 불황 속에서 특히 자동차업계는 감원선풍이 불고 있었다. 그 기업체들이 하루아침에 수천대의 트럭 주문을 받았으니 『신풍』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만 했다.
어디 그뿐인가. 미군과 군속들의 일시 체재로 일본에 떨어지는 돈은 연3억 달러나 되었다.
1950년7월부터 55년9월 사이에 일본은 미군 차량 수리비만 1억2천5백만 달러를 벌었다.
이런 특수 붐은 56년12월까지 무려 6년 동안 계속되었다. 일본 수상이 『천우』 운운한 것은 숨김없는 반사적 발언이었다.
일본은 그때 한국동란이 없었으면 오늘 세계가 선망과 질투의 눈으로 바라보는 경제대국이 될 수 있었을까.
시계를 되돌려 보자. 일본의 「엔고」로 우리는 공전의 호황 기회를 맞으려 하고 있다. 36년 전 일본이 「한국 특수」를 전후 부흥과 재기의 도약대로 삼았듯이 우리도 오늘 「엔고」의 자우를 값있게 맞아야 한다. 우리가 이 기회에 「대일 의존형 경제」체질을 벗어나지 못하면 경제 발전의 기회는 다시없을 것이다. 기업과 국민과 정부는 오늘의 이 「엔고」자우를 엄벙뗑 맞고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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