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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녀 등 50명 농락 덜미잡힌 가짜 검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검사 신분증을 보여 주면 콧대가 꺾이지 않는 여자가 없었읍니다.』
3년 남짓 검사·사법연수원생을 사칭하며 50여명의 미혼여성 등을 울리고 금품을 뜬어 온 가싸 검사 백종각씨(26·무직·서울 석관 2동 333)가 12일 서울지검 특수부에 사기·공문서 위조 등 혐의로 구속됐다.
이 사건은 50년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박인수 사건」의 현대판.
1m 76cm의 훤칠한 키에 준수한 귀공자형 얼굴, 능란한 화술과 세련된 옷차림에 검사신분증, 어느 것 하나 마음들뜬 여성들에게는 부족한 것이 없어 보이는 백시였다.
고향인 충남 당진의 H고교 1년 중퇴가 학력의 전부인 백씨는 검사가 되는 게 꿈이었지만 제대 후 공무원 시험도 번번이 떨어져 도장포 점원·서적외판원 등으로 전전했다. 꿈을 버리지 못하고 84년 6월 별 공부도 않은채 제25회 사법시험에 응시해 본것이「법조인(?) 경력」의 전부.
아버지는 고향에서 마을금고 이사장이고 두형은 공무원으로 있는 궁색치 않은 집안.
백씨의 사기 행각은 우연한 일로 비롯됐다.
84년 11월 하순 서울S은행 D지점에 예금을 하러갔던 백씨는 창구 행원 L양(당시 25세)이 신규 가입자 카드에 쓸 직업을 묻자 얼떨결에 「서울대 법대생」이라고 둘러댔다. L양이 미모여서 장난기도 섞여 있었지만 L양의 표정이나 말씨가 훨씬 친근감있게 느껴졌고 두 사람은 곧 가까와졌다.
백씨의 거짓말은 눈덩이처럼 커져 곧 사법연수원생이 됐고 얼마 뒤에는 검사로 변신했다. 도장포 점원을 한 것이 큰 도움이 돼 그때마다 알맞는 신분증을 위조, L양을 안심시켰던 것.
결국 두 사람은 결혼을 약속하게 됐고 L양은 만날 때마다 백씨에게 돈까지 대 쥐야 했다. 명복은 상사 접대비·파티 비용·교통사고 치료비 등 닥치는 대로 둘러댔다.
재미를 붙인 백씨는 여대생·캐디·연예인·회사원·점원·여고생에 이르기까지 같은 수법으로 접근했지만 신분증 한 장에 안 넘어가는 여자가 없었다. 결혼을 약속하면 순순히 돈과 몸을 허락했다.
백씨의 수첩에 적힌 여자 명세서에 올라 있는「명단여」는 모두 97명. 피해자 주소도 서울·강원·경북·경남·전남 등 전국 각 지역이 골고루였다. 백씨가 상대했다고 자백한 여자만 50여명. 그동안 갈취한 금품은 3백 40여만원이라고 진술하고 있지만 수사관은 훨씬 많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백씨의 범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85년 11월에는 정변사기 사건이 나자 그 사건의 수사 검사를 사칭하며 헬드클럽·이발소 등을 찾아가 변태영업·탈세 수사 등을 혁박, 돈을 받아냈다. 심지어 비행기·기차의 승차귄 구입 때도 검사라고 호통을 처 쉽게, 싸게 사기도 했다.
85년 12월에는 사법연수원 수료식에도 참석, 분위기를 익히고 백모씨(현 서울지검 검사시보)의 이름을 확인한 뒤에는 백씨 행세를 하는 등 가명도 5가지나 사용했다.
백씨의 범행이 계속되는 동안 사법연수원과 서울지검에는 확인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담판을 지으려고 찾아간 부모도 있었고 기업체로부터 『탈세 사실을 봐 달라』고 청탁 전화도 걸려 왔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백씨는 10일 낮 춘천교도소에 아버지 면회를 가던 주부 K모씨에게 면회를 시켜주겠다며 접근, 접근, 역시 몸과 돈을 요구하다 K씨의 신고로 검거된 것.
백씨의 진술로 피해자 조서를 받으러 출두한 여자들은 한결같이 백씨의 범행 사실을 모른다고 부인, 수사관들을 골탕먹이고 있다.

<신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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