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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무대 서는 73세 칼송 “표현엔 나이의 한계 없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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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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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세의 무용수 카를린 칼송. 그가 안무한 세 작품을 엮은 ‘단편들’은 올해로 19회째를 맞이한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출품작이다. 이 중 칼송은 ‘Black over Red’에 직접 출연한다. [사진 Laurent Paillier]

현대 무용계 대모 카를린 칼송(사진)이 내한한다. 올해 73세다. 안무가로만 오는 게 아니라, 직접 무대에 올라 30분간 독무를 춘다.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이종호 예술감독은 “원로로 대우 받는 차원이 아니다. 유럽에서 그가 무대에 오르면 지금도 매진이다. 젊은 춤꾼과 ‘맞짱’ 떠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고 혀를 내둘렀다.

28일 무용축제서 30분간 독무
180㎝ 키에 유연·날렵한 움직임
9년 전 내한 공연 때도 놀라움 선물
“매일 운동하고 붉은 고기류 안 먹어
마음 단련하는 게 무대 오르는 비결”

칼송은 2007년 한국에 왔다. 당시 서양적 테크닉에 동양적 정신을 버무린 ‘두 개의 시선’이란 작품을 공연했다. 그때도 이미 60대 중반이었다. 하지만 180㎝의 늘씬한 키, 긴 팔다리, 유연하고 날렵한 움직임 등은 입을 쩍 벌어지게 할 만큼 압도적이었다. 객석 여기저기서 “정말 환갑 넘은 거 맞아?”란 소리가 흘러나왔다. 장선희 세종대 교수는 “그로부터 9년이 지나 일흔을 훌쩍 넘겼지만 카리스마는 여전하다. 불가사의하다”고 말했다.

칼송은 1943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선 문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졸업후 본격적으로 무용계 입문했고, 1970년대 프랑스의 러브콜을 받아 당시 파리오페라발레단의 교육·안무가로 참여했다. 장인주 무용평론가는 “칼송의 인문학적 교양과 즉흥적 스타일은 발레 단원의 고정된 사고틀을 깨기에 최적이었다”고 평했다. 현대무용의 중심을 미국에서 프랑스로 건너오게 한, ‘누벨 당스’(Nouvelle danse)의 근원에 칼송이 자리한 것이다.

28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단편들’이란 타이틀로 세 작품을 올리는 칼송과 e메일 인터뷰를 가졌다.

지금도 무대에 오를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
“매일 아침 운동을 빼먹지 않는다. 공연 전 혹은 가르칠 때 스트레칭도 필수다. 붉은 고기류는 먹지 않는다. 육체 훈련보다 몸의 중심을 찾고, 명상하는 시간이 나에겐 더 많다. 몸보다 중요한 건 마음을 단련하는 일이다.”
대학에선 문학과 철학을 전공했는데 어떻게 무용수가 됐나.
“내가 기억하는 한 난 언제나 춤추고 있었다. 어린시절 피아노·그림·연기·무용 등을 배우면서 자랐다. 가족들을 상대로 작은 공연을 열기도 했다. 무엇보다 나에게 춤은 어딘가 알 수 없지만 미지의 세계를 향해 떠나는 모험과도 같은 ‘시’처럼 다가왔다. 문학이든 움직임이든 결국은 나를 표현하는 방법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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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송은 40여 년간 100여 편의 작품을 선보였다. 특히 파리·베네치아·스톡홀름·헬싱키 등 유럽 전역에서 전방위적으로 활동했다.“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간다. 춤엔 경계가 없다”며 자유분방하고 유목민적 기질을 마음껏 발휘했다. 그의 춤은 한마디로 ‘파도타기’와 같다. 장인주씨는 “근육을 늘어뜨리다 순간 멈춤자세에서 다시 힘을 충전하고 폭발시켜 더 큰 파도를 만드는 방식”이라고 전했다. 시각적 요소가 가미돼 ‘보는 시(詩)’란 평가도 받았다. 그 기저에 꿈과 향수, 마술적 환상 등을 담아왔다. 폭력이나 과격함은 없다. 최근엔 동양적 참선에 관심이 높다.

그래도 나이가 들었다는 걸 체감하나.
“육체적으로 25살처럼 춤을 출 순 없지 않겠나. 하지만 지금 나에겐 지혜와 깊이가 있다. 기술적 측면보다 영성에 더 집중한다. 신체적으론 상체를 많이 쓰고 특히 팔동작에 유념한다. 그래도 무엇을 전달하는 데 있어 나이의 한계란 없다고 확신한다.”
지금도 배우고 있는 춤이 있는가.
“과거 인도 무용수, 플라멩코 댄서와 함께 작품을 만들었다. 한국도 빼놓을 수 없다. 2000년대 중반 김매자 선생과의 작업 덕분에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태극권에 30여 년간 심취해 왔다. 동양 무예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통일을 추구한다. 내 춤과 일맥상통한다.”
후배들이 가장 닮고 싶은 무용가로 당신을 꼽곤 하는데.
“춤은 존재할 뿐이다. 어떤 목적이 없다. 순간적인 움직임을 통해 나타났다 사라지는 게 춤이다. 그래서 춤은 거짓말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 벌거벗음에 온전히 자신을 맡길 수 있다면, 어떤 다른 이유가 들어갈 틈이 없다면, 춤꾼으로 살아간다는 건 큰 행운이자 선물이라고 난 생각한다.”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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