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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가 먼저다 1부] 4. 일자리 늘리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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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금 우리는 '1만달러의 덫'에 빠져 있다. "(삼성 이건희 회장), "노조가 깃발을 들고 나서면 기업들이 투자를 할 수 없다."(LG 구본무 회장)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그룹 총수들의 말은 우리 경제의 현주소를 여실히 반영해준다. 일자리가 없어 허덕이는데 분배와 복지가 강조되고, 그러다보니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가 넘는 유럽 강소국들의 문턱에도 못 미치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일본도 소득 1만달러 때에는 파업이 많았었다. 그런데 2만달러, 3만달러를 넘어서며 싹 없어졌다."

지난 화물연대 집단행동 때 쌍용양회의 스즈키 타다시(鈴木忠)공동대표가 시멘트 수송에 차질을 빚을까 걱정하던 직원들에게 해준 말이다. 문제는 '파이를 어떻게 나눌까'가 아니라 '어떻게 키울까'에 있다는 것이다.

최선의 복지는 성장이요, 고용이다. 따라서 "고용 문제는 단순히 노동정책이 아니라 경제정책.산업정책으로 풀어가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투자확대가 확실한 대안=신도리코는 다음달 중국 칭다오(靑島)에 프린터 공장을 준공한다. 그런데 3년 전 중국에 공장을 짓는 방안을 검토하자 어떻게 알았는지 중국의 지방관리들이 당시 우리나라까지 찾아와 경쟁적으로 공장건설 지원안을 내놓았다고 한다.

막바지까지 경쟁을 붙였고, 결국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한 칭다오에 공장을 짓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네덜란드의 완구업체 레고는 정반대의 경험을 했다. 레고는 2001년 경기도 이천에 50만㎡에 달하는 대규모 관광단지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수천개의 일자리가 생길 투자였다. 그러나 규제에 걸려 무산됐다. 자연보전권역의 경우 6만㎡ 미만의 관광지 조성사업만 허용하는 법규에 걸린 것. 레고는 결국 투자처를 독일로 옮겼다.

이처럼 우린 나가는 기업을 붙들지 못하고, 오는 손님은 외면한다. 대한상공회의소 인력개발사업단 고유진 상무는 "일자리를 늘리는 데는 다른 방법이 없다. 공장가동률을 높이고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바로 정부 몫이다. 규제를 과감히 풀어 투자를 유도해야 한다.

L그룹 관계자는 "신규 투자를 하면 세제혜택을 주어서라도 투자를 유도하고 이를 통해 1, 2만개의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방법"이라고 말했다.

◆노사문제 걸림돌 제거가 필수=미국의 자동차 빅3는 한국 투자에 적극적이었다. 우리의 자동차산업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었다는 평가 때문이다. 게다가 아시아 시장이 커지면서 한국이 전초기지로서의 지리적 이점도 갖췄다.

중국은 노동문제 등 대부분의 조건이 우리보다 낫지만 기술력이 떨어진다. 빅3 입장에서는 기술력이 매우 중요한 요소다. GM이 대우를 인수하고 다임러크라이슬러가 현대자동차와 공동투자를 벌이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움직임이 주춤하고 있다. 다임러크라이슬러의 강연석 이사는 "파업 등 노사문제가 외국 기업의 투자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며 "파업으로 생산라인이 멈추는데 기술력이 무슨 소용이 있나"라고 반문했다.

때문에 실업문제의 핵심을 노사관계에서 찾는 사람이 많다. 대구대 전용덕 교수는 "유망 성장산업은 임금이 높아 채용 규모를 줄이고, 사양산업에서는 임금이 낮아져야 하는데 이게 안 되니 해외로 발길을 돌린다"며 "고용 상황에 따라 임금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장지종 부회장은 "법과 원칙을 지키는 딱 부러진 노동정책 하나라도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고 탄식했다.

LG경제연구원 조용수 연구위원은 "기업이 어려울 때는 인력을 구조조정하고, 호황일 때는 투자를 늘려 사람을 뽑는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가동돼야 한다"고 진단했다.

◆실질적인 일자리 창출은 중기.벤처에서=현 상태로는 대기업의 새로운 고용창출 능력은 포화상태(잡코리아 김화수 사장)라는 지적이 있다.

대기업은 인력이 아닌 시스템 투자를 통해 생산성을 높이려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金사장은 "중소기업 채용시장을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실질적인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는 논리를 편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취업난 속에서도 중소기업들의 부족 인력은 지난해 말 기준 20만명이 넘는다. 한국경제연구원 이수희 기업연구센터 소장은 "벤처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출자총액 제한을 풀어야 벤처가 활성화하고, 그래야 청년실업이 상당 부분 풀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대경제연구원 유병규 경제본부장은 "신사업 창출이 원활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DJ 정부 때 정보기술(IT)산업에서 돌파구를 찾았듯이, 이제는 새로운 성장산업을 적극 찾아나서야 한다"고 제안했다.

특히 사업체 규모가 작을수록 청년층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큰 만큼 중소기업들 스스로가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지적(한국노동연구원 이병희 박사)도 나온다.

아울러 중.고교 진로지도 전담교사를 부활하고, 재학 중 기업현장에서 체험할 수 있도록 여름방학 기간을 3개월 이상으로 늘리는 학기제 개편(한국노동연구원 정인수 부원장)도 검토해볼 만하다.

특히 구직자들은 대기업 선호에서 탈피, 궂은 일에 도전하는 창조적인 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잡코리아 김화수 사장은 "첫 직장은 '대기업이라는 브랜드'보다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울 것이냐, 시야를 얼마나 넓힐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 도움말 주신 분

고유진(대한상의 인력개발사업단장) 김농주(연세대 취업담당관) 김동욱(경총 경제조사팀장) 김정호(자유기업원 원장) 김화수(잡코리아 사장) 김현희(잡링크 실장) 남성일(서강대 교수) 박호환(아주대 교수) 복거일 (경제평론가) 손병두(전경련 상임고문) 송영중(노동부 근로기준국장) 유경준(KDI 연구위원) 유병규(현대경제연구원 경제본부장) 이경상(대한상의 기업정책팀장) 이경희(창업전략연구소 소장) 이규황(전경련 전무) 이병희(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이상우(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 이지평(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이현석(대한상의 조사본부장) 이호성(경총 사회복지팀장) 장범식(숭실대 교수) 장지종(기협중앙회 부회장) 전용덕(대구대 교수) 정인수(노동연구원 부원장) 조용수(LG경제연구원 거시경제팀장) 최윤선(리크루트 리서치팀장) 황인학(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현명관(전경련 부회장)

*** 특별취재팀

김영욱 전문기자(팀장), 정선구.이원호.김창우.염태정.김승현 기자(이상 산업부), 남윤호.김기찬 기자(정책기획부), 김광기 기자(경제연구소)

<youngkim@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 바로잡습니다

7월 24일자 5면 '일자리가 먼저다-투자할 마음 살리면 고용 절로 는다'기사 중 "네덜란드의 완구업체 레고"를 "덴마크의 완구업체 레고"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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