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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조 백일장] 8월 수상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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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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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심사평

거미의 일상을 상징화
대상 향한 몰입 뛰어나

8월의 폭염 속에서도 시조 창작의 열기가 뜨거웠나 보다. 특히 정진희의 의욕적인 작품들은 절차탁마의 과정을 암시하듯 선자의 눈을 즐겁게 하였다. 다른 투고자의 작품들도 시마(詩魔)에 들린 듯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으나, 대상에 대한 깊이와 형상화가 아쉬웠다.

정진희의 ‘거미’를 장원작으로 뽑는다. 지난달에 선외로 언급된 기세를 몰아 함께 투고한 ‘억새’, ‘쥐똥나무’ 등도 대상에 대한 몰입과 주체화의 과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어 상징화하는 역량이 괄목할만한 진전을 이루었다.

‘거미’에서 ‘허공에서 허공으로’ 이어진 길은 창밖 노을을 배경으로 한 ‘거미’의 일상이지만, 둘째 수에서부터 주체의 길로 이전되어 고해성사와 같이 그대를 향해 ‘아슬아슬 손’을 내미는 길로 은유되면서 의미의 깊이를 심화시킨다. ‘몸의 단을 쌓는’ 거미의 길을 읽어내는 심안을 살려 계속 정진하기를 부탁드린다.

차상에 오른 이희영의 ‘꼭!’은 일상의 사소한 국면을 속도감 있게 전개하여 의미를 종결짓는 솜씨가 돋보였다. 셋째 수는 배반당하는 일상을 ‘먼 산을 바라본다’와 같이 거리를 두게 되는 지점인데, ‘꼭 바쁜 그런 날’을 통해 얻게 되는 깨달음을 함축한다. 다만, 앞의 두 수에서 나열된 ‘머피의 법칙’이 도식화된 느낌을 떨치지 못하는 것은 특수한 자신의 경험을 통해 압축적으로 제시되어야 함을 나타낸다.

차하로는 정춘희의 ‘춤추는 창문’을 선한다. 이 작품은 오후의 실내에서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는 주체의 내면을 물무늬 그리듯 묘사하고 있다. 현존의 한 때가 행복한 몽상 속에 풍부하게 잠겨 있으나, 첫째 수에서 보인 상투적인 표현들은 흠으로 지적되었다.

이외에도 전제진·장옥경·최승관의 작품이 끝까지 주목받았음을 밝히며 다음 달을 기대한다. 이들 투고작 중에는 압축되었으면 좋았을 작품과 간혹 보이는 상투적인 시어가 흠이 되었다. 단시조나 두 수로 된 연시조를 함께 투고해 볼 것을 권한다.

초대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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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은 야위고 덧없어 보이지만 기실 황혼만큼 뜨겁고 사무치는 건 없다. 그래서 ‘귀로의 마지막 절규’라고 노래한다. 서녘 일몰은 일출을 알리는 동녘보다 더 깊고 은근하다. 태양의 집은 산 너머에 있다. 바람은 좀 더 머물러 있으라 하고 밤 별들은 이제 그만 쉬어라 한다. 그런 몇 번의 자맥질 끝에 해가 진다.

시나브로 가을이 오고 언제인지도 모르게 벌써 추수가 끝났다. 줄지어 벼 베는 사람도, 요란한 탈곡기 소리도 없으니 농요는 커녕 언제 추수를 했는지, 올 농사 소출이 어떤지도 알 리 없다. 그래도 들과 농부는 제 할 일을 다 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듯 한 생이 진다. 너무나 평범한 진리가 유리잔에 설탕이 녹듯 잘 녹아 있다. 원로 시인은 군말을 자르고 안으로 다독이면서 훌륭한 한 수를 빚어내었다. 범상한 것을 범상치 않게 노래하는 것, 그것이 시가 아니겠는가.

시조의 정형성은 이런 것이다. 초장은 뜨거운 마지막 자맥질을 하는 태양을 노래하고, 중장에선 그런 서녘하늘을 배경으로 추수 끝낸 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종장에선 늘 변하는 놀과 변함없는 청산을 대비시켜 마무리를 짓는다. 각각의 장이 갖춰야 할 덕목을 충실히 지키면서 한 생애를 담담히 들려준다. 시조란 이런 것이라고.

◆응모안내= 매달 20일 무렵까지 접수된 응모작을 심사해 그달 말 발표합니다. 장원·차상·차하 당선자에게 중앙시조백일장 연말장원전 응모자격을 줍니다. 우편(서울시 중구 서소문로 100번지 중앙일보 문화부 중앙시조백일장 담당자 앞. 우편번호 100-814) 또는 e메일(inform@joongang.co.kr)로 접수할 수 있습니다. e메일로 응모할 때도 이름·연락처를 밝혀야 합니다. 02-751-5379.

이달균 시조시인
심사위원 : 박권숙·염창권(대표집필 염창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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