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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조 백일장] 9월 수상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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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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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심사평

벌레소리에 심신이 투명해지는 9월, 풍성한 결실을 기대했으나 응모작품들은 전 달에 비해 양과 질 모두가 미진하다. 그러나 그중 빛나는 감각의 투망질이 돋보이는 몇몇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큰 수확이었다.

‘입동·나목’에 노모 투영시켜
언어부림 완성도 올린 수작

이 달의 장원에 오른 이가은의 ‘입동’은 시조미학에 대한 탄탄한 사유와 선명한 이미지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처리된 수작이었다. ‘잎 다 놓은 나무’에 ‘한 평생 거두어갈 때의 노모’를 투영시킴으로써 ‘입동’이라는 절기의 의미를 죽음의 통과제의인 입사식의 의미로 확장시키고 있다. 특히, ‘푸른 나날 빠져나가/ 멍든 몸만 덩그러니’ 남은 나목의 모습이 종장에서 생을 마친 노모의 기억으로 급격히 반전되면서 작품의 완성도를 극적으로 끌어올리는 밀도 높은 언어 부림의 솜씨가 흥미로웠다.

차상에 오른 장옥경의 ‘타래난초’ 역시 자연물인 ‘타래난초’를 내밀한 자의식의 공간으로 불러들여 형상화했다. 꽃줄기가 뭉쳐놓은 실타래 같아 나선형으로 꼬여서 꽃이 피는 타래난초의 모습에서 ‘타래타래 꼬인 삶’을 수용하고 극복하는 방식을 읽어낸다. 즉, ‘타래난초’는 ‘외줄 타고 오르는 길’이며 ‘등불’ ‘작은 꿈’ ‘하늘 종’이다가 마침내 ‘오체투지의 순례자들’로 인식된다. 마지막 수에서 새로운 세계관을 보여주지 못하고 억지로 시상을 마무리한 듯한 느낌은 무척 아쉬웠다. 차하로는 안창섭의 ‘컴퍼스’를 선한다. 원호를 그릴 때 쓰는 도구인 ‘컴퍼스’에 착상하여 ‘당신과의 관계’를 회화적 감각으로 그려내는 것이 눈길을 끌었다. ‘당신의 반지름의 말’ ‘떠날 때도 중심이다’ ‘서로를 증명하는 시작과 끝점’ 등 관념에 빠지기 쉬운 소재를 나름의 명징한 이미지로 풀어내는 역량은 갖추고 있으나 너무 도식화된 상상력이 흠으로 지적되었다.

심사위원: 염창권·박권숙(대표집필 박권숙)

초대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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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시가 시인을 닮지 않을 때가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홍진기 시인의 지긋한 눈빛과 나직한 음성을 그대로 닮아 있다. 등 뒤에서 익는 가을은 시나브로 잎을 마르게 하고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햇살의 온기를 낮춰준다. 그렇다. 가을 정취는 느끼는 이마다 다르다. 릴케가 만난 ‘가을날’은 등 뒤에서 익어가는 가을은 아니었다. 단맛으로 익어가는 과실들의 풍성함을 위해 며칠만 더 남국의 뙤약볕을 갈구하지 않았던가.

시인도 젊은 날엔 청잣빛 꿈을 꾸었다. ‘동공을 아른대던 청잣빛 환영’은 진정 환영처럼 사라진 것은 아니다. 슬하를 떠난 장성한 자식이 대문을 밀고 들어오는 소리를 듣는다면 문득 귀밑서리 시린 어느 날도 그리 서럽지는 않으리라. 황혼을 바라보고 있지만 가족 건사하며 옹골차게 물금(수평선) 넘어 여기까지 온 노시인에게 박수를 드리고 싶다. 초장과 중장, 그리고 종장 사이에 행을 비워둔 것은 말 하지 않은 무엇인가를 느껴보라는 뜻일 게다. ‘하루가/잔광을 거두는/구부정한 저녁나절’은 그저 허랑한 사내의 눈에 비친 가을 풍경만은 아니리라. 비록 식어가는 태양이지만 그 그늘 속엔 누렇게 익어가는 호박이 있을 것이고, 호박잎 따서 저녁상 준비하는 아낙네의 손길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읽고 싶다.

이달균 시조시인

◆응모안내= 매달 20일 무렵까지 접수된 응모작을 심사해 그달 말 발표합니다. 장원·차상·차하 당선자에게 중앙시조백일장 연말장원전 응모자격을 줍니다. 우편(서울시 중구 서소문로 100번지 중앙일보 문화부 중앙시조백일장 담당자 앞. 우편번호 100-814) 또는 e메일(choi.sohyeon@joongang.co.kr)로 접수할 수 있습니다. e메일로 응모할 때도 이름·연락처를 밝혀야 합니다. 02-751-5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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