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언」교사의 징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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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문교부의 「교육민주화 선언」교사 징계방침이 교육계의 거센 반발로 진통을 겪고 있다. 해당 교사들의 사표제출 거부는 말할 것도 없고 시·도 교위에서도 교사·학생들의 반발을 우려, 아직 구체적인 징계대상이나 기준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당국이 이들 선언교사들을 처벌키로 한 고충은 짐작은 한다.
가뜩이나 개헌문제로 시국이 혼미를 거듭하는 상황에서 일선교사들이 벌인, 집단행동의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게다. 교육민주화선언이 문면으로는 정치적 색채가 없지만 자칫 정치판에 휩쓸릴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판단될 수도 있다.
그러나 바로 당국의 그러한 경직되고 행정편이적인 시각이 「선언」을 불러일으킨 직접적인 원인이 아닌가 한다.
헌법은 물론 교육법 등 하위 법들도 한결같이 교육의 자주성·자율성과 정치적 중립을 보강하고 있다. 그런 법 정신에 비추어 보면 교육이 어떤 정치권력의 하부구조일 수 없고 관료적 지배의 종속물일수는 더더욱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교육현실은 어떤가. 교과서에서부터 일선교사들의 행동지침에 이르기까지 관료적 지배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것이 우리의 숨김없는 교육현장의 모습이다.
일선 교사들에게는 교과서와 교육과정에 따라 기계적으로 가르치는 것만이 요구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교사들의 창의성은커녕 교육의 자주성·자율성이 발붙일 여지는 없다. 오죽하면 교사들이 자신의 위치를 「관료조직의 말단」이라고 표현했겠는가.
교육일선의 요구는 대부분 묵살된 채 하향식 지시만이 판을 치는 풍토에서 교육이 이 나라의 장래를 보증하는 기능을 다할 수 없음은 말할 것도 없다.
「교육위기」를 배태한 최대의 원인이 당국의 지나친 개입과 간섭이란 지적이 나온 지는 오래됐지만 아직 개선의 기미는 보이지 않은채 오히려 악화되었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교육이 정치적으로 중립이어야 한다는 데는 논의의 여지가 없다. 정치적인 중립을 보장하는 길이 교육의 자율성·자주성인 것 또한 이론이 있을 수 없다. 교육이 「행정조직의 말단화」했다는 것은 교육의 위상이 그동안 어떠했는지를 한마디로 나타내준다.
중등교육협의회의 「교육민주화선언」은 그런 뜻에서 교육의 제자리 찾기 움직임이라 해석해야 한다. 교육이 교육다와야 한다는 것은 정치적 차원이전의, 국가적인 명제임을 알아야한다.
만의 하나라도 선언교사가운데 다른 불순한 동기가 있었다면 실정법에 따라 처벌하면 된다. 그렇지 않고 문면대로의 순수한 동기에도 불구하고 처벌을 강행한다면 정치적 「보복」이란 인상을 씻을 수 없다.
시국에 관한 선언은 대학교수에서 비롯되어 중·고교 교사에까지 파급되었다. 정치적 색채가 짙은 대학교수는 놓아둔 채 중·고교교사들만 처벌한다는 것은 형평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그야말로 교육을 행정의 말단조직쯤으로 여기는 당국의 안역한 시각을 재확인하는 꼴이 아닐 수 없다.
교육공무원은 같은 공무원이지만 일반직 공무원과는 확연하게 다른 목적과 기능을 하는 조직이다. 그런데도 공무 이외의 집단행위를 금지한 국가공무원법을 준용, 처벌하려드는 것은 실정법 차원에서도 물의의 소지가 많다. 뿐만 아니라 교사에 대한 권고사직을 금지하고있는 사립학교 교사들에게 사표를 요구하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
따지고 보면 27만명(그중 초등교사 13만7천6백31명)의 교사가운데 5백44명은 0.2%에 지나지 않는다. 극소수의 일을 갖고 전체의 일인 양 법석을 떤 당국의 대응책이 오히려 사태를 더 악화시킨 결과가 되었다. 선언교사 징계를 학교자율에 맡기는 것이 일파만파의 역작용을 막는 길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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