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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 소음·낙서에 고통…동네 뜨는 북촌·이화동 주민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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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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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이화동 ‘벽화마을’에 정숙한 관광을 당부하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이 동네는 70여 개의 벽화로 인해 도심의 인기 관광지로 떠올랐다. 하지만 일부 주민들이 관광객이 몰려와 소란을 피우고 쓰레기를 함부로 버린다며 동네 계단과 벽에 있던 벽화 중 6개를 지난 4월과 이달 12일에 지워버렸다. [사진 김춘식 기자]

22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가회동 ‘북촌한옥마을’의 한 골목길. 관광객 수십 명이 디지털카메라와 스마트폰으로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었다. 왁자지껄했다. 약 100m 길이의 골목길 양쪽에 있는 17채 한옥 중 10곳의 대문에는 ‘Silence please(제발 조용히 해주세요)’라고 쓰인 종이가 붙어 있었다. 그 문구 아래는 중국어, 일본어로 같은 뜻의 말이 적혀 있었다. 골목 곳곳에 서울 종로구청이 만든, 정숙을 요청하는 안내판과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합해서 16개였다.

아침부터 수십명 몰려와 노이로제
서촌 지역 거주민들도 마찬가지
작년엔 2건뿐이던 민원 올해 18건
화난 주민들 벽화 지워 갈등도

관광지가 된 서울 도심 주택가의 주민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구청에서 현수막까지 만들어 내 걸 정도다. 서울 종로구 북촌, 서촌, 이화동 벽화마을이 대표적이다. 북촌 주민 김재혁(43)씨는 “매일 오전 7시30분이 되면 관광객 수십 명이 몰려와 여행용 가방을 끌며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에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다. 사람 사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이 동네에 4년째 거주 중이라는 오옥순(55)씨는 “처음 이사 왔을 때는 대문을 열어놓고 관광객들에게 집도 구경시켜주고 화장실도 이용하게 해줬다. 그러나 일행 하나가 들어오면 줄지어 들어오는 통에 결국 문을 닫아 놓고 산다. 그랬더니 이제는 아침마다 대문 앞에 버려진 쓰레기 치우는 일이 고역이 됐다”고 말했다.

서울시와 종로구 등 관할 지자체에선 ‘투어리스티피케이션(Touristification)’ 조짐까지 보인다고 우려한다. 투어리스티피케이션은 일반 주거 지역이 관광지로 변하면서 거주민의 생활이 위협받아 결국 이주에 이르는 현상을 말한다. 서울시와 종로구청에 따르면 북촌의 경우 관광객으로 인한 민원이 올 들어 지난달까지 18건이 접수됐다. 지난해 통틀어 관광객 관련 민원은 2건이었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상대방이 호소할 데가 마땅치 않은 관광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18건은 상당히 많은 건수다”고 말했다.

동네를 떠나는 이도 늘고 있다. 종로구 가회동 통장 이강배(53)씨는 “우리 통에 있는 아흔 채의 집 중에서 열 집 정도에는 주민이 살고 있지 않다.세를 살던 주민도 소음·주차 문제 등을 이유로 속속 동네를 떠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동네의 부동산 값도 약세로 돌아섰다. 한 부동산 중개인은 “5년 전만 해도 3.3㎡당 3000만~3500만원 선이던 가회동 한옥이 지금은 평당 2000만~2500만원 수준으로 내려앉았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실력 행사’에 나서는 곳도 있다. 지난 4월 주민들이 직접 동네 명물인 벽화를 지운 종로구 이화동 벽화마을이 대표적이다. 이곳 주민들은 이달 12일에도 네 곳의 벽화를 추가로 지웠다. 이 지역 명물로 통하던 ‘해바라기 계단’은 회색 페인트로 덧칠됐다. 계단 양 옆 벽면엔 붉은색 페인트로 ‘주거지에 관광지가 웬말이냐’ ‘관광지 반대’ 등의 글이 적혀 있다.

주민들의 거주권을 넘어선 생활권 보호 주장도 나온다. 관광지화가 되면서 정작 주민 편의시설은 사라져서다. 비영리단체 ‘이매진피스’의 임영신 대표는 “프랑스 파리는 400개 보호 상업 구역을 지정해 반찬 가게, 세탁소, 정육점 같은 주민에게 필요한 업소는 임대료 등을 지원해 보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조한대 기자 cho.handae@joongang.co.kr
사진=김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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