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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초유의 추경안 폐기 눈앞에 둔 20대 국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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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강태화 기자 중앙일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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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화
정치부 기자

지난 4·13 총선 이후 떠들썩했던 ‘황금분할’이나 ‘협치’ 등의 화려한 수식어가 20대 국회에서 사라지고 있다. 점점 ‘역대 최악’의 국회라던 19대 국회를 닮아가고 있다.

22일은 여야가 추가경정예산(추경)을 처리하기로 합의했던 날이었다. 그러나 이날 본회의는 열리지 않았다. 국회를 찾은 방청객들은 텅 빈 본회의장만 확인하고 발길을 돌렸다. 본회의장에 있어야 할 여야 의원들은 오전부터 따로 모여 서로를 비난했다.

새누리당은 평소보다 1시간30분을 앞당긴 오전 7시30분 최고위원회의를 열었다. 세 시간에 걸친 비공개 회의의 결론은 “플랜B는 없다”였다. 야당이 추경안 처리의 조건으로 내건 ‘서별관 청문회’ 증인(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 홍기택 전 산업은행장) 채택에 동의해 줄 수 없다는 결론이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민생 추경의 무산 책임은 ‘선 추경 후 청문회’ 합의정신을 파기하고 증인 문제로 고리를 걸어 민생 추경을 무산시킨 야당에 있다”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지원이 결정된 ‘서별관회의’ 멤버인 세 사람을 청문회에 불러야 한다는 입장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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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는 “증인 채택에 진척이 없어 오늘 추경안 처리가 무산돼 대단히 유감”이라며 “왜 대규모 부실이 발생했는지 (청문회에서) 따지지 않고서는 국민 세금(추경)을 투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곤 오후에 의원총회를 열어 만장일치로 “3명의 핵심 증인을 제외한 청문회는 있을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원내 1, 2당의 대치를 중재해 줄 국민의당의 역할도 기대 이하였다. 당초 더민주보다 세 사람의 증인 채택에 강경했던 국민의당은 이날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만큼은 증인 채택에서 제외해줄 수 있다는 선까지 물러났다. “청문회가 내실 있게 운영될 수 있다면 증인 문제를 양보할 여지가 있다”(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면서다.

하지만 익명을 원한 새누리당 관계자는 “증인 채택이 무슨 흥정이냐”며 “ 우리 입장에서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구성됐던 19대 국회는 출발부터 정쟁의 장이었다. 그러나 이런 싸움터에서도 8월 임시국회까지 2건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20대 국회가 지금까지 통과시킨 법안은 제로다.

새누리당은 오는 25일 다시 본회의를 열어 추경안을 처리할 수 있도록 야당과 협상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상황은 불투명하다. 지금껏 정부의 추경안이 국회에서 폐기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협치를 내세웠던 20대 국회가 새로운 기록 수립을 눈앞에 두고 있다.

강태화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