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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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첫 번째 「어린이날」은 1923년5월1일에 있었다.
천도교 소년회, 불교 소년회, 반도 소년군 등의 지도자들이 중심이 된 조선소년운동협회가 주최한 행사였다.
하오 3시 천도교회당에서 기념식과 선언문이 낭독되고 선전문이 배포되었다.
그때 선포된 「소년운동의 기초 조항」은 『①어린이를 재래의 윤리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야 그들에 대한 완전한 인격적 예우를 허하게 하라 ②어린이를 재래의 경제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야 만14세 이하의 그들에 대한 무상 또는 유상의 노동을 폐하게 하라 ③어린이 그들이 고요히 배우고 즐거이 놀기에 족할 각양의 가정 또는 사회적 시설을 행하게 하라』란 주장을 펴고 있다.
그때 집집마다 배포된 선전지의「어른에게 드리는 글」엔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쳐다보아 주시오』라든지,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되 늘 보드랍게 하여 주시오』와 같은 문구가 끼어 있었다.
실제 「어린이」란 말을 처음 사용한 것은 소파 방정환이다.
일설에는 1920년 8월25일 간 『개벽』 제3호에서 소파가 「잔물」이란 필명으로 외국 동화 『불켜는 이』를 『어린이 노래』로 번역, 소개한 것이 효시라고 한다.
1923년 4월17일 최초의 소년단체 통합 기구인 조선소년운동협회를 조직한 것도 소파와 김기전 등이 중심이었다.
또 이 조직에 앞서 21년 5월 천도교 소년회를 창립하고 22년 5월1일에 이미 「어린이의 날」행사를 가진 것도 이들 소파와 김기전이었다.
23년 5월1일에 소파는 일본 동경에서 유학생 진장섭·조재호·손진태·정인섭·이헌구·마해송·윤극영 등과「색동회」를 조직했고, 그 발회일을 바로 「어린이 날」로 정했다는 세도 있다.
소파는 유학생들을 개별 방문하여 어린이운동을 설득, 추진했다.
『자네 출세하면 뭘 하나. 우리 세대는 말과 노래를 잃고 이렇게 울며 지내더라도 다음 세대에게는 우리 나라, 우리 문화, 우리 역사를 다시 찾아주도록 해야 하지 않겠나』하며 윤극영을 설득해 『반달』을 짓게 만든 것도 그였다.
「국제 어린이의 날」설립이 채택된 것은 54년 10월 유엔의 9차 총회 때다.
이에 따라 일본은 5월5일, 인도는 11월14일, 미국은 5월1일을 어린이날로 정해 기념하고 있다.
정작 매일 매일이 어린이날 격인 이들 나라는 전국 방방곡곡 어디를 가도 어린이를 위한 복지시설이 없는 곳이 없다. 우리의 「선진국화」도 사실은 어린이 복지시설의 충실화에 달려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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