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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조정이 궁금하면 일본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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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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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논설위원

올 연말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는 국내 가계부채 규모는 1300조원이다. 이와 관련해 섬뜩한 얘기가 계속 나돈다. 미국이 세계 금융위기 이후 풀었던 돈을 조만간 회수하고 나서면 가계부채 뇌관이 터져 집값이 폭락할 것이란 시나리오 말이다. 그동안 뒷짐만 지고 있던 정부도 은근 겁을 먹었는지 25일 가계부채 종합대책을 내놓기로 했다. 분양권 전매 기한 연장과 집단대출 축소를 비롯해 다양한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주택시장은 인기 있는 곳에 수요 몰리기 마련
냉·온탕식 규제 말고 과열 원인 정밀 제거해야

대책을 세우되 제발 냉·온탕식 규제는 자제해주길 바란다. 무엇보다 주택 시장도 수요·공급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만 잊지 말고 대책을 세우면 좋겠다. 서울 강남이나 부산 해운대구, 대구 수성구 같은 인기 지역과 신규 분양 아파트는 수요가 넘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주택보급률이 100%에 달한 국내 주택시장에서 집은 단순히 주거공간에 머물지 않고 상품의 성격도 갖는다. 국민소득 3만 달러에 육박하면서 내 집 마련 수요 못지않게 더 나은 생활·교통·교육 환경을 찾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10~20년 시차로 한국이 전철을 밟고 있는 일본을 보면 안다.

일본은 1990년 거품경제가 꺼지면서 부동산 시장이 줄곧 침체 곡선을 그려왔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다른 세상이 있다. 더 좋은 주거환경과 신규 주택에 대한 수요는 그침이 없다. 삶의 질이 높아지면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그래서 인기지역의 신축 주택은 분양되기 무섭게 팔려나간다.

일본에선 이런 흐름이 저출산·고령화와 맞물려 빈집을 양산하고 있다. 우선 저출산으로 주택 수요가 둔화됐다. 여기에 부모가 별세하면 시골 집을 비워두는 경우가 많다. 또 새 집이 계속 나올수록 낡은 집이 외면되면서 빈집이 900만 채에 육박하고 있다. 한국도 이런 흐름을 피할 수 없다. 거주 환경이 좋거나 새 집에 대한 수요는 그칠 줄 모를 것이고, 이미 100만 채를 돌파한 빈집이 일본과 같은 이유로 계속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주택시장은 앞으로 세분화된 영역별로 관리될 필요가 있다. 우선 주거 환경이 우량한 선호 지역에서는 재건축을 비롯해 적극적으로 공급을 늘려 수요를 충족시켜줘야 한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해야 소비자 욕구를 충족하면서 시장도 안정될 수 있다.

또 인기가 없어 미분양이 우려되는 지역에는 공급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 수요가 약한 곳에 대량 공급하는 것은 주택시장을 왜곡시킬 뿐이다. 낙후된 지역은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살고 싶은 곳으로 바꿔주는 정책도 병행해야 한다. 셋째는 빈집 관리다. 일본처럼 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신경 써야 한다. 정부가 사들여 리모델링한 뒤 임대주택으로 공급해도 좋다. 빈집을 방치하면 주택보급률을 부풀리고 슬럼화를 촉진하는 부작용을 낳게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택시장의 경기 조절이다. 거듭되는 냉·온탕식 정책은 금물이다. 과열되면 찬물을 끼얹고, 냉각되면 김이 날 정도로 가열시켜선 서민만 골병 든다. 일본의 부동산시장이 돌이킬 수 없이 침체의 나락에 빠진 이유도 일률적인 냉·온탕식 정책의 부작용 때문이었다.

과열에는 정밀 폭격이 필요하다. 우량 주거환경에 대한 주택 소비자의 욕구는 꺾어봐야 두더지처럼 튀어나올 뿐이다. 그러니 과열의 원인만 제거하자는 것이다. 주택경기 부양을 위해 그동안 풀어줬던 주택담보대출은 순차적으로 조일 필요가 있다. 그래서 비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을 포함해 대출자의 실제 상환 능력을 보는 총체적상환부담(DSR) 규제를 적용하는 것은 바람직해 보인다. 그래야 가구당 7000만원을 넘어선 가계부채가 더 늘어나지 않는다.

분양시장에 뚫린 투기 구멍은 막아야 한다. 다운계약서를 근절하고, 단기·미등기 전매를 통한 ‘P(분양권 프리미엄) 장사’도 제한해야 한다. 이같이 정밀 조정을 통한 주택정책이 있어야 실수요자 중심으로 주거환경이 좋은 주택이 계속 공급되는 쪽으로 주택시장이 연착륙할 수 있다. 부동산을 통한 부(富)의 세습 차단도 대책에 포함돼야 한다. 자녀에게 고가 주택을 사주거나 싸게 전·월세를 주는 과정에 철저한 과세가 필요하다. 이런 점만 잘 실천해도 주택시장은 안정화될 수 있다.

김동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