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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일자리, 뭣이 중한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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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정철근 기자 중앙일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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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근
중앙SUNDAY 플래닝에디터

김대중 정권 때인 1999년 2월, 나는 부산의 직업학교 비리를 취재했다. 정부는 외환위기 직후 실직자가 급증하자 민간 직업학교에 기능인력 훈련과정을 위탁했다. 국가의 곳간이 거덜난 상황에서 ‘피 같은’ 예산을 쏟아부었다. 그런데 일부 직업학교가 정부 지원금을 착복했다. 이들은 인근의 야간 공고생들을 실직자로 둔갑시키고 출석부를 조작하는 수법을 썼다. 취재를 시작했을 때 이해할 수 없는 의문이 들었다. 사방천지에 구직자들이 넘치는데 왜 이런 무리수를 뒀을까. 문제는 교육 과정에 있었다. 비리를 저지른 직업학교는 대개 자동차정비·기계가공·공유압 과정을 개설했다. 그러나 부산에는 이런 분야의 인력을 수용할 기업들이 별로 없었다. 삼성이 투자한 자동차공장마저 구조조정에 들어간 상황이었다. 수요를 고려하지 않은 정부 지원은 직업학교 원장에게 ‘눈먼 돈’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사립대학 등록금에 맞먹는 지원금을 타내 외제차를 굴리고 빌딩을 샀다.

청년수당 놓고 갈등 빚는 정부와 서울시
무엇이 청년에게 절실한지부터 고민하라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5월, 노동부는 서울 강남 등 6곳에 ‘고용선진화시범센터’라는 것을 열었다. 노동부를 출입했던 나는 김대환 당시 노동부 장관을 따라 현장을 방문했다. 센터는 강남 테헤란로 ‘금싸라기’ 땅에 있었다. 인테리어도 대기업 사무실처럼 깔끔했다. 자신의 적성에 맞는 직업을 알아보는 프로그램은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들로 북적였다. ‘정부가 이제야 예산을 제대로 쓰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휴게공간에 떡하니 자리잡은 당구대를 보는 순간, 기자의 비판 본능이 발동했다. 휴게실 서가를 가득 메운 책들을 살펴보니 가관이었다. 인기 연예인의 에세이집에 소설책·만화책까지 있었다. 구직자들을 배려한 것이라는데 그들의 절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양모씨는 홍보· PR쪽 일자리를 원한다. 그는 최근 정부의 청년취업성공패키지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취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는 접은 상태다. 그는 학교에서 1단계인 직무적성 상담을 받으면 15만원을 지급한다는 문자를 보고 시작했다. 졸업을 앞둔 이제 와서 적성검사라는 게 무슨 효과가 있을까. 그래도 아무 조건 없이 돈을 준다니, 안 받으면 손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2단계 직업훈련 단계에 접어들자 후회감이 몰려왔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PR 전문가의 컨설팅, 공인 영어 성적이다. 그러나 하루 5시간의 교육은 대부분 OA 관련 과목에 치우쳐 있었다. 수강생들의 수준도 대졸 취업준비생부터 중·장년 실직자, 고교 졸업자까지 천차만별이었다. 상담관조차 “달리 할 게 없으면 듣는 것이 낫다”고 ‘영혼 없는’ 조언을 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 청년일자리 정책은 대폭 확대됐다. 20개 부처에서 무려 159개의 청년고용 프로그램이 가동되고 있다. 그러나 청년실업률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도대체 이런 저효율의 원인이 뭘까. 지금 한국의 청년일자리 예산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한참 못 미친다. 절대 금액도 문제지만 만족도와 질도 떨어진다. 수요자(청년)의 요구보다는 공급자(기업·교육훈련기관) 위주로 지원이 편중돼 있기 때문이다.

청년수당 문제를 놓고 정부와 서울시가 갈등을 빚고 있다. 정부는 미취업 청년들에게 현금을 지급하겠다는 박원순 시장의 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했다. 그랬던 정부가 12일 취업알선과정에 참여한 청년들에게 현금 지원 방안을 내놓았다. 박 시장은 “구동존이(求同存異)의 마음이 절실하다”고 했다. 큰 뜻은 같으니 사소한 이견은 놔두고 공동목표를 먼저 추구하자는 뜻이다. 청년들에게 현금을 지급하면 일부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가 지원금을 착복한 직업학교, 실직자 예산을 직원 해외연수에 쓴 산업인력관리공단, 인턴 지원금을 받고 청년들을 소모품처럼 부리는 기업의 도덕적 해이보다 클까. 지금 청년수당 아이디어를 누가 먼저 내놓았는지는 중요한 본질이 아니다. 박원순 시장도 자신의 브랜드를 빼앗겼다고 분노할 일이 아니다. 요즘 유행어 ‘뭣이 중한디’의 답을 하라면 청년 일자리다. 큰 뜻이 같다면 서로를 비난하기 앞서 무엇이 청년들에게 절실한 지원인지를 경쟁적으로 찾는 게 우선이 아닐까.

정철근 중앙SUNDAY 플래닝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