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에 안밀린다" 총선 앞둔 氣싸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제2의 대북송금 특검법에 대한 노무현(盧武鉉)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여야 관계는 장기 경색국면을 맞을 수밖에 없게 됐다. 한나라당은 즉각 국회를 무시한 처사라며 비난을 퍼붓고 나섰다.

盧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지난 15일 한나라당이 단독으로 특검법을 통과시킬 때부터 예고해 놓았던 터다. 盧대통령으로서는 호남민심도 고려해야 하고, 정국 주도권을 한나라당이 좌지우지 못하게 하겠다는 의지도 실었다. 대북지원 논란이 내년 총선까지 이어지는 것도 차단해야 한다는 필요성도 깔린 다목적 포석인 셈이다.

거부권 행사 자체의 파장은 그리 크지 않을 수도 있다.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도 국회로 돌아온 재의 요구에 대해 다시 다룰 뜻이 없다고 했다. 문제는 거부권 행사가 盧대통령의 여야 대선자금 공개 제안, 영수회담 개최를 둘러싼 신경전과 맞물려 내년 총선을 앞둔 양측의 기싸움을 더욱 촉발시키고 있다는 대목이다.

청와대 측은 최병렬 대표 체제의 한나라당에 적잖은 불만을 드러내 왔다. 한 고위 관계자는 22일 "홍사덕(洪思德)총무는 대화가 되는 편이나 崔대표는 과거 야당대표와 별 다를 게 없는 것 같다"고 했다.

崔대표가 취임 직후부터 "신당에서 손을 떼라"고 한 데 이어 "대통령으로 인정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현 정권은 허무한 정권"(YS면담)이라며 '독설'만 쏟아내 대화의 여지가 없다는 얘기다.

崔대표의 YS면담 이후 유인태(柳寅泰)정무수석이 즉각 "민정당 독재정권의 폭압정치를 떠올리게 한다"며 공개적으로 응수했던 것도 청와대의 이런 기류를 반영한 것이었다.

취임 초 한나라당 당사 방문 등 '상생의 정치'를 모색했던 盧대통령이 이 때문에 거부권 행사와 함께 보다 큰 '그랜드 디자인(큰 구도의 정치)'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盧대통령은 최근 정무수석실에 한나라당.민주당 등 기존정당과의 개별접촉을 중단하라고 지시하며 민주당과의 정치적 절연도 시사했다. 대 정치권 관계는 '청와대 대 국회'의 구도로 하라는 것이다. 대선자금 공개 제안 때도 盧대통령은 "나는 여당의 영수가 아니다"라고 했다.

盧대통령은 특히 이번의 대선자금 공개 제안에 이어 8.15를 즈음해 지역구도 타파를 위한 소선구제와 독일식 비례대표 방식의 도입을 제안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이 이를 받아들일 경우 총선 다수당에 총리를 주는 이원집정부제를 '빅딜'하겠다는 구상이다.

최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