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는 민간인은 식당 주인뿐…세상 돌아가는 것 잘 모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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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날 ‘검은 옷’ 입은 사람들, 공무원밖에 못 본다. 민간인이라고 만나는 사람은 식당 주인과 점원밖에 없다.”

의원들이 본 세종시 4년 문제
4급 4일, 3급 3일, 2급 2일만 세종에
장(여관)·차에서 잔다고 장차관 말도

지난해까지 세종시에 있는 기획재정부에서 계약제도과장으로 근무했던 김정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한 세종시 실태다. 김 의원은 “세상 돌아가는 걸 알아야 정책에 어떻게 반영할지 생각하게 되는데, 섬처럼 갇혀 있으니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국가고시를 봤는데 세종시의 ‘지방’ 공무원이 된 거 같다”거나 ‘세종시 실제 근무 일수가 5급(사무관)은 5일, 4급(과장·서기관) 4일, 3급(국장)은 3일, 2급은 2일, 1급은 1일, 장차관은 (세종시에 없고) 여관(장)과 차(車)에서 잔다고 장차관’이라는 말도 나온다”고 전했다.

‘세종섬’에서 나온 관료 출신 의원들도 세종청사 이전 이후 공무원들의 현실 감각이 떨어졌다고 입을 모았다. 국무조정실장 출신인 추경호 새누리당 의원은 “식사 때나 퇴근 후 지인 등과 만나 생활 속 경제 이슈를 접해야 하는데 그럴 기회가 줄면서 정책에 현장성을 반영하기가 점점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청장을 지낸 이현재 새누리당 의원은 “9월 28일부터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민원과 청탁의 경계가 애매해 공무원들이 사람들을 만나는 데 더 움츠러들 것”이라며 “단기성, 보여주기식 행정 문화가 바뀌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당 김성식 정책위의장은 “정부가 전기요금 누진제를 개편할 수 없다며 ‘부자 감세’ 논리를 들다가 박근혜 대통령과 당 지도부가 만난 뒤 순식간에 뒤집었다”며 “오더(지시) 받지 않은 일에는 몸을 사리는 현상이 뚜렷하다”고 비판했다. 새누리당 정책위 관계자도 “전기세 민심은 옳고 그르냐가 아니라 에어컨을 더 틀고 싶은데 얼마가 더 나올지 몰라 걱정하는 마음이었다”며 “관료들이 현장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고 말했다.

장차관이나 실·국장이 국회를 오가느라 수뇌부가 비어 있는 점도 업무 효율을 떨어뜨린다. 이명수 새누리당 의원은 “자료 제출을 요구하면 결재할 장차관이 서울에 있다는 이유로 진행이 더디다”며 “어떤 공무원들은 서울에 오려고 ‘국회 갈 일이 없느냐’고 먼저 묻기도 한다”고 전했다.

국회에서도 장차관 출석을 최소화하자는 제안이 나온다. 김상훈 새누리당 의원은 “대신 내용을 더 잘 아는 담당 실·국장, 과장을 불러 부처가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부총리를 지낸 김진표 더민주 의원은 “국회 예결위가 열리면 매일 개최되는 계수조정 소위는 의원들이 세종에 가서 하자”고 말했다.

박유미·이지상 기자 yumi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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