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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혐오 발언, 국가서 규제 땐 부작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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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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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발언
주디스 버틀러 지음
유민석 옮김, 알렙
372쪽, 1만8000원

여혐(여성혐오)·남혐(남성혐오)·극혐(극도의 혐오) 등 ‘혐오’가 흔한 시대다. 국어대사전이 ‘싫어하고 미워함’이라고 정의한 이 단어는 ‘사회’나 ‘범죄’와 짝을 이루며 점점 활용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페미니스트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61)가 쓴 『혐오 발언』은 마치 현재 한국 사회를 겨냥한 듯 보이지만, 실은 1997년 출간된 책이다. 한국어 번역본은 이번에 처음 나왔다. 버틀러의 주장은 도발적이다. “언어 행위는 반드시 의도한 대로 행위하지 않으므로 혐오 발언의 효력은 절대적이지 않다”면서 혐오 발언에 대한 국가 차원의 규제를 반대한다.

얼핏 혐오 발언의 폐해를 과소평가하는 게 아닌가 싶지만, 그의 소신은 “발언과 효과 사이의 간격”에서 나왔다. 그는 “혐오 발언은 듣는 이를 침묵시키지만은 않으며 오히려 되받아쳐 말하는 저항의 계기가 된다”고 강조했다. ‘퀴어(queer)’는 그가 “혐오 발언에 대한 전복적인 재인용” 사례로 든 단어다. 원래 동성애자를 모욕하는 말이었지만 지금은 성소수자 해방운동의 상징처럼 쓰이게 됐다는 것이다.

난해한 글쓰기로 악명 높은 저자의 책인 만큼 독해의 어려움은 각오해야 한다. “상처를 주는 말은 그것이 작동했던 과거의 영토를 파괴하는 재배치 속에서 저항의 도구가 된다” 등 그의 핵심 주장을 이해하는 데 44쪽 분량의 ‘옮긴이 해제’가 상당히 유용하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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