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보다 낮은 한국·스페인 국채금리…거품 낀 채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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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글로벌 ‘국채 서열’이 흔들리고 있다. 미국보다 한국 국채의 시장금리(만기 수익률)가 높은 흐름이 깨졌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11일 현재 한국의 10년 만기 국채의 수익률(시장금리)이 미 국채 10년물보다 낮았다. 이날 한국이 연 1.4% 수준이었다. 반면 미국은 연 1.5% 정도였다. 한국 국채 값이 미국보다 비싼 값에 거래되고 있다는 얘기다.

재정위기 남유럽 국가 10년물
미국 국채 수익률보다 낮아져
유로존 양적 완화 영향 역전현상
“채권 더 이상 안전 자산 아니다”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지난달 10일 이후 한 달 동안 이런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올해 초에도 하루나 이틀 정도 금리 역전현상이 일어나기는 했다. 하지만 요즘처럼 한 달 정도 이어지는 일은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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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 역전은 10년짜리 채권에서만 일어났다. 중기 국채인 3년이나 5년 물에선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다. 단기적으로 보면 최근 달러 값은 미국 실물경제 둔화 기미가 다시 나타나면서 고개를 떨구고 있다. 여기에다 한국 국가신용등급이 상승한 것도 국채 값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국채 10년물 금리 역전 현상은 한-미간의 문제만이 아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남유럽 10년 국채 값이 가파르게 치솟았다”며 “이탈리아와 스페인 10년물 금리가 1% 언저리에서 형성되고 있다”고 이날 전했다. 재정위기에 시달린 이탈리아와 스페인 10년물이 기축 통화국 미국보다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셈이다.

기현상이다. FT는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있는 반면 영국과 유로존, 일본 등이 양적완화(QE)를 하는 바람에 금리 역전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런 금리 역전은 글로벌 채권가격 급등이 낳은 현상의 일부일 뿐이다.

요즘 주요국 국채뿐 아니라 채권시장의 가장자리인 정크본드(신용등급 BBB-) 시장까지 달아오르고 있다. 블룸버그정크본드지수는 11일 현재 164포인트에 이르렀다. 사상 최고치다. 올 2월 중순 이후 20% 가까이 치솟았다. 돈의 힘이다. 박종연 NH투자증권 채권전략팀장은 최근 보고서에서 “브렉시트 이후 불확실성이 커지자 뭉칫돈이 채권형 펀드로 몰려드는 현상이 뚜렷했다”고 설명했다.

정크본드 급등은 놀라운 반전이다. 지난해 중반부터 올해 2월 초까지 정크본드 가격은 20% 넘게 추락했다.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이 “QE 시대 거품을 보인 정크본드가 끝내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다”며 “QE로 부풀어 오른 채권거품이 붕괴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설 정도였다. 이런 정크본드 가격이 다시 20% 정도 오르며 사상 최고치를 나날이 경신하고 있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본격화기 전까지는 채권 강세가 이어질 수 있다는 쪽이다. 미 시카고선물거래소의 기준금리 선물가격을 보면 미 기준금리 인상은 내년 초에 재개될 전망이다. 이 예상대로라면 채권 가격이 서너 달 이상 오름세를 더 이어갈 수 있다.

그렇지만 채권거품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원조 닥터둠인 마크 파버 글룸붐&둠의 발행인은 최근 CNBC 등과 인터뷰에서 “안전자산의 대명사인 채권 가격이 껑충 뛰는 바람에 위험자산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증권분석의 아버지’인 고(故) 벤저민 그레이엄이 생전에 했던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오른 자산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고 한 말을 떠올리게 하는 경고다.

역사적으로 보면 거품 붕괴는 늘 예상보다 빨랐다. 또 붕괴는 가장 약한 고리에서 시작되곤 했다.

미국 경제매체인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채권시장의 약한 곳은 정크본드”라며 “채권 가격이 떨어지면 미국에서만 1조 달러(약 1100조원)가 위험해질 수 있다”고 최근 경고했다.

강남규·심새롬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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