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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 부양’해서라도 소공동 옛 건축물 보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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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 맞은편에서 한국은행 쪽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낡은 건물 7채가 나란히 서 있다. 사각형 타일로 장식된 건물 외벽 곳곳이 검게 변색됐고, 간판을 뗀 흔적들이 흉물스럽게 남아 있다. 9일 오후 카페·마사지업소 등 7개 건물에 있던 업소들은 모두 폐업 상태였다. 1층의 한 식당에는 ‘재건축 관계로 2015년 12월 22일 업무 종료합니다’란 문구가 든 종이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7개월 이상 방치돼 있음을 의미했다. 서울 한복판 금싸라기 땅의 건물들이 이처럼 버려져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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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근·현대 건축자산’으로 지정한 부영주택 소유 건물들. [자료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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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은 이렇다. 건물 7채와 그 뒤편의 부지(총 6562㎡)의 소유주는 건설업체 부영주택이다. 이 회사는 이 땅과 주변 건물 4채를 호텔을 지을 목적으로 2012년 8월 삼환기업으로부터 1721억원에 샀다. 그 뒤 서울시에 개발계획안을 제출해 지난해 10월 도시·건축공동위원회 심의를 거쳤다. 그 옆 건물 3채도 올해 초에 사들였다. 관광숙박업(관광호텔) 사업계획도 조건부 승인을 받았다. 서울시 건축심의위원회의 심의와 건축 허가만 남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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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부영에 제시한 건물 보존 방법. 1, 2층(화살표)을 기둥만 남기고 허물어 보행로를 만들라는 의미다. [자료 서울시]

그런데 그 뒤 서울시와 부영주택이 건물 처리 문제를 놓고 의견을 달리하면서 사업이 중단됐다. 서울시가 7채의 건물 중 5채를 ‘근·현대 건축자산’으로 지정하면서 건물을 최대한 보존하라고 권고한 게 발단이었다. 서울시는 2015년 사대문 안에 있는 건축물 210개를 근·현대 건축자산으로 지정했다. 문화재청에 등록된 문화재는 아니다. 따라서 보존에 대한 법적 근거는 없다. 서울시 관계자는 “도시건축공동위원회·도시계획위원회 등에 속한 역사·건축 전문가들과 시민참여단 60명이 건축 연도와 용도·양식 등을 검토해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영 호텔 신축 예정 부지 내 5채
도로 폭 확장 위해선 철거 불가피
서울시 “1~2층 기둥만 남겨 통로를”
전문가들 “보존 가치 재검토 필요”

부영주택 관계자는 “서울시가 실질적으로 이행 불가능한 방안만 내놓으면서 건축 심의를 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1976년에 만들어진(2014년 재정비) 서울시의 ‘도시계획시설 결정’에 따라 현재 건물은 모두 허물어야 한다. 7채의 건물 앞 도로 폭을 25m로 넓혀야 한다는 내용 때문이다. 이처럼 도로 폭을 넓히면서 동시에 근·현대 건축자산으로 지정된 건물 5채를 보존하려면 건물을 그대로 뒤로 옮기거나 공중에 띄우는 수밖에 없다.

부영주택 관계자는 “타일로 된 건물의 외벽을 떼어 보존하는 안을 냈으나 서울시에서 ‘1~2층은 기둥만 남겨 둬 건물 아래에 통행로를 만들고 그 윗부분은 그대로 보존하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밀 안전진단 결과 D등급(사용제한)이 나와 건물 아래를 뚫어 보행로를 만들면 보행자나 건물 입주자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어렵다. 서울시가 안전을 담보하는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시는 안전진단기관이 아니다. 부영이 알아서 안전성을 확보하고 공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건물 보존에 대한 논의와 검토가 선행됐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광장건축사사무소 이현욱 소장은 “지방자치단체가 관리방법도 준비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문화유산으로 지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리고 근·현대 건축자산으로 지정해 개발을 제한하려면 기금을 조성해 적절한 보상을 해 주거나 사업지에 대한 용적률 완화 등으로 보상해 주는 제도적 장치를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원한 한 건축가는 “해당 건물에 대한 문화재적 가치를 다시 따져 봐야 한다. 옛날에 지었다고 해서 보존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채승기·조한대 기자 ch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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