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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한 실험 줄어든 시, 현실세계로 내려온 소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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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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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회 미당·황순원문학상이 지난달 예심을 마쳤다. 왼쪽 사진은 미당문학상 예심 장면. 왼쪽부터 평론가 김나영·강동호, 시인 김언, 평론가 양경언·이재원.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순해진 시, 현실에 좀 더 다가선 소설.

미당문학상
김현, 강성은 등 젊은 시인 가세
세월호 등 현실과 관계 개선 시도

황순원문학상
장애·동성애, 여성빈곤·폭력 등
다양한 사회적 소재로 확대

요즘 주목받는 현대시와 단편소설의 특징을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난해한 언어 실험’이라는 꼬리표가 붙을 정도로 어렵다고 지탄받던 젊은 시인들의 시는 한층 덜 어려워지고, 소설은 현실세계에 뿌리를 대려 한 듯한 작품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최근 예심을 마쳐 본심 진출자 10명씩이 가려진 미당문학상과 황순원문학상의 후보작들을 통해 본 올해 한국문학의 지형도다.

본지가 16년째 운영하는 두 문학상은 최근 1년 동안(2015년 7월∼2016년 6월) 주요 문예지에 발표된 시와 단편소설을 각각 다섯 명씩의 예심위원들이 두 달간 면밀하게 검토한다. 단순히 유명 문인의 이름을 딴 문학상을 뽑자는 게 아니라 지금의 문학좌표와 앞으로의 진행방향을 시사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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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쩍 젊어진 문학평론가 4명(강동호·김나영·양경언·이재원)과 2009년 수상자인 김언 시인으로 구성된 미당문학상 예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평론가 5명(박인성·서희원·소영현·양윤의·차미령)으로 구성된 황순원문학상 운영위원회는 그보다 일주일 앞선 21일 각각 2차 예심을 열었다. 두 상 모두 세 시간 가까운 열띤 토론을 거쳐 본심 진출자들을 가렸다. 미당문학상은 1980년생 시인 김현, 73년생 시인 강성은이 포함돼 한층 싱그러워진 느낌, 황순원문학상은 성석제·김애란·권여선·이기호 등 요즘 한국소설을 대표할 만한 작가들이 두루 포함돼 흡사 ‘별들의 전쟁’을 방불케 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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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원문학상 예심 장면. 왼쪽부터 평론가 서희원·소영현·박인성·차미령·양윤의.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미당문학상 예심위원들은 “예전처럼 과격한 시가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상황인 것 같다”고 공통적으로 지적했다. 파격적인 실험으로 자신의 존재증명을 하려는 경향이 줄었다는 얘기다.

평론가 양경언씨는 그런 변화가 사회현실에 대한 시인들의 관심이 높아진 결과라고 분석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역시 세월호가 자리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격한 실험시, 그를 통한 미학적 갱신에 몰두했던 시인들이 현실과 정면으로 마주친 순간 과연 어떤 식으로 관계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요즘 시에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다.

평론가 김나영씨는 “시인이나 시를 읽는 독자들이나 창문이나 바다라는 단어를 더 이상 무심코 지나치지 못한다”고 말했다. 반드시 세월호를 떠올리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평론가 강동호씨는 “현실(세월호)에 대해 직접 언급한 시가 예전처럼 촌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문학과 정치를 구분하는 이분법이 세월호 같은 거대한 재난 앞에서 설득력을 잃고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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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언 시인은 좀 다른 얘기를 했다. “사회적 맥락을 어떻게 담아냈느냐보다 시인이 자신의 아픔을 어떻게 통과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들이 역시 아프게 읽혔다”고 했다.

단편소설은 변화 중, 그 방향은 ‘사회적인 것’과의 접촉면 확대라는 평이 많았다. 가령 정용준의 ‘선릉산책’은 장애인, 성석제의 ‘믜리도 괴리도 업시’는 동성애가 소재다. 권여선·최진영의 후보작은 부유층 자제의 탈선 혹은 젊음의 치기 어린 방황이 소재지만 계급적 적대감이 묻어난다. 최은영과 김애란의 작품은 상실과 애도의 서사.

평론가 차미령씨는 “과거 장애인이나 동성애를 소설로 다루면 마이너리티와 접속을 시도했다고 했을텐데 요즘은 마이너와 메이저의 구분·경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소설의 사회적 소재가 확대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평론가 양윤의·박인성씨는 “세계를 재현하고자 하는 작가적 상상력이 미분화·세분화하고 있는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가령 여성주의 소재의 경우 단순히 성적인 박탈감만을 그리는 식이 아니라 여성 빈곤, 폭력 등 세밀한 현실을 건드린다는 얘기다.

평론가 소영현씨는 “요즘 소설이 새로운 모색의 기로에 서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고, 평론가 서희원씨는 “젊은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 경향이 눈에 띄었다”고 했다.

미당·황순원문학상 예심위원 10명의 심사평은 다음주부터 본지 인터넷판(https://www.joongang.co.kr)에 차례로 실린다. 주관적인 느낌을 살린 ‘육성 심사평’이다.

미당·황순원문학상은 각각 서정시와 단편소설에서 일가를 이룬 미당 서정주(1915~2000) 시인과 소설가 황순원(1915~2000) 선생의 문학을 기리기 위해 본지가 2001년 제정했다. LG가 후원한다. 수상작은 본지 창간 기념일(9월 22일) 즈음에 발표한다.

글=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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