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희망하는 곳으로 보낼 듯|최·신 부부 탈출, 법적으론 어떻게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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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최은희·신상옥 부부가 주 오스트리아 주재 미 대사관으로 탈출한 사건은 국제법상 선례가 거의 없는 독특한 케이스다.
피랍·강요된 생활에서 극적으로 탈출한 특수한 사건이므로 일반적인 정치적 망명 사건과는 성격이 다르다.
다만 정치적 박해를 피해 탈출한 것도 넓은 의미의 망명에 속한다고 볼 수 있으며 국제법상 따진다면 일종의 「정치적 난민」에 해당한다고도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난민에 대한 비호권 부여 (또는 망명 인정) △정치적 비호 처리에 관한 국제 법규 관행·사례가 적용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이번 사건은 우선 영토상의 비호 (또는 망명처)를 구한 것이 아닌, 「외교 사절의 장소」에 비호 요청을 했기 때문에 망명권의 관할 문제가 제기된다. 불가침성이 인정되고 있는 공관 등 외교 사절의 장소에서의 비호권, 즉 외교상 비호권 (Polit-ical asylum)은 영토 비호권과 달리 대부분의 국가가 인정하지 않고 있다. 영토 주권국인 주재국 정부가 관할권을 행사해야한다는 것이다.
지난 61년 외교관의 신분·면제 특권 등을 규정한 빈 협약을 체결할 때도 이 문제는 거론되지 않았으며, 75년 유엔 총회에서 외교상 비호 문제에 관해 토의했으나 대다수 국가가 공관을 비호처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자세를 견지했다.
따라서 이번 최·신 부부 탈출 사건의 경우 관할권 행사는 빈 주재 미국 대사관이 아닌 오스트리아 정부에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통설이지만 이번 경우 미 대사관 측이 사태를 주도하는 특이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미국 정부 역시 공관에서의 비호권을 명시적으로 허용하지 않는 관례였으며 비호 사실·처리 과정·행선지 등에 관해 구체적·공식적으로 시인도 부인도 않는 것을 관례로 삼아왔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정부가 미국과 우호 관계에 있으며 △최·신씨의 입국 과정에 불법적인 요소가 없으므로 관할권 소재 여부는 중요 문제가 아닌 것으로 분석되고 있으며 오스트리아 정부는 비호 요청에 대해 일반적으로 관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과 같은 탈출 사건에 대해서는 관할권이 어디 있든 간에 탈출·정치 망명·비호를 희망하는 외국인에 대하여 대다수 국가는 정치적 박해의 이유가 충분히 근거가 있는지 여부를 검토하고 근거가 인정되는 경우 인권의 존중과 그 국가의 이익과의 조화를 고려한 후 처리한다.
그럴 경우 △자국내 체재를 인정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판단되는 사람에게는 관계 국내법에 따라 체재를 허가하고 △체재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라도 박해를 받을 우려가 분명한 지역으로 송환하지 않고 있다.
또한 제3국으로의 정치 망명을 희망하는 외국인에 대하여는 당해 국에서 이를 받아들일 경우 본인의 희망을 존중하는 인도적 견지에서 호의적 배려를 하는 것이 다수 국가의 관행이다.
세계 인권 선언 및 67년 유엔 총회에서 결의한 「비호권에 관한 선언」에서도 이 같은 정신은 재확인되고 있다.
또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 (1951년)과 유엔의 「난민의 지위에 관한 의정서」 (1966년) 등도 인종·종교·국적 또는 정치적 의견 등의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는 난민을 생명이나 자유를 위협받을 우려가 있는 영역의 국경으로 추방·송환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최·신씨의 경우 결국 처리 과정 및 최종 행선지가 주목을 끄는데 △오스트리아 체재 △서방 등 제3국으로의 비호 지역 선택 △한국 귀환 등으로 예상할 수 있다.
다수의 국가들은 이 같은 사안을 처리할 때 직접 인도·인수 방법을 택하거나 유엔 고등 판무관 (UNHCR)과 협의, 로마 소재 유엔 난민 수용소에 비호 요청자를 보낸 후 그곳에서 비호 희망지로 보내는 경우로 나눠진다.
난민 수용소를 거치는 우회적 방법은 관련 정부들과 야기될 수 있는 정치적 갈등을 유엔기구를 통해 희석시킨다는 의미가 있다.
지난 84년11월 군사 분계선을 넘어 미국으로의 정치적 망명을 요청했던 소련인 「마투초크」 사건의 경우 △판문점이 법률적으로 특수성이 없지 않으나 관할권은 한국이 행사했으며 △일시 난민으로 유엔 고등판무관에 신병을 인도, 유엔 난민 절차에 따라 신병을 처리하는 방식이 적용됐다.
이번 최·신 사건도 형식·절차가 어떻든 간에 이둘 부부의 의사에 따라 결국 그들이 희망하는 곳으로 비호 허용 될 가능성이 높다. <박보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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