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료 반환소송 3500명 참여 “누진제 없는 상점만 펑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기사 이미지

지난 7일 서울 신촌의 한 유명 브랜드 화장품 가게는 문을 활짝 열고 영업을 했다. 가게 안에서 나오는 차가운 에어컨 바람이 손님을 맞았다. 강남역·명동 등 주요 상권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가게 종업원들은 “문을 열어 놔야 손님이 차가운 바람을 찾아 자연스럽게 들어올 수 있다”고 말했다. ‘누진제 전기료 폭탄’이 무서워 에어컨을 ‘장식품’으로 둘 수밖에 없는 일반 가정과 너무 다른 모습이다.

“가정용에만 누진제 부당” 여론
정부 ‘문 열고 냉방’ 단속 강화
과태료 최대 300만원 물리기로
8일 전력수요 올 최고 기록도

정부가 이렇게 문을 열고 냉방하는 업소를 단속하기로 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8일 “대표적 에너지 낭비 사례인 ‘문 열고 냉방 영업행위’를 점검하고 위반 시 과태료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산업부는 냉방시설을 가동하면서 문을 열고 영업하는 상점에 대해 적발 횟수에 따라 50만~3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계획이다. 시행은 11일 이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산업부는 2013년부터 2015년까지 문을 열고 냉방 영업을 한 업소에 과태료를 부과해 왔다. 정부는 애초 올해는 단속을 하지 않기로 했지만 입장을 바꿨다.

김용래 산업부 에너지산업정책관은 “심각한 폭염으로 애초 예상했던 것 보다 전력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며 “절차를 서둘러 11일께부터 단속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기를 많이 쓰면 전기요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정용과 달리 누진제를 적용받지 않은 상점 등이 전기를 펑펑 쓰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 것도 정부 방침을 바꾸는 데 영향을 미쳤다. <본지 7월 28일자 3면>

실제 가정용 요금에 대한 누진제 적용의 부당함을 호소하며 소송에 참여한 시민도 늘고 있다. 한국전력공사를 상대로 한 ‘전기요금 부당이득 반환 청구’ 소송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인강에 따르면 8일(오후 5시 기준)에만 1200명 이상이 소송 참여를 신청했다. 전날(800명)보다 크게 늘었다. 인강 측이 2014년 8월 20명을 대상으로 소송 대리에 나선 이후 누적 신청자는 이날로 3500명을 돌파했다.

곽상언 인강 대표변호사는 “가정용 전기에만 누진제를 적용하는 데 따른 부당함이 빠르게 공감을 얻고 있다”며 “신청자 수는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소송 진행 중인 인원은 750명이다.

정부는 올여름 최대 전력 수요를 8170만㎾로 예상했다. 하지만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며 실제 전력 수요는 정부의 전망을 뛰어넘었다. 8일 전력 수요는 8370만㎾를 나타냈다. 올 1월 21일 종전 최고 수준(8297만㎾)을 넘어선 사상 최고 기록이다. 하절기 기준 최고 전력 수요 기록도 이날을 포함, 올해만 벌써 네 차례 경신됐다.


▶관련 기사
① 누진제 차별…상점은 문 열고 에어컨, 가정집은 요금 폭탄
② 이 더위에 에어컨 참으라니…노후 아파트 주민 분통



전력 수요가 크게 늘면서 이날 전력예비율은 7.0%로 떨어졌다. 예비율이 10%를 밑돈 건 지난달 11일(9.3%)과 26일(9.6%)에 이어 올해 세 번째다. 산업부는 휴가를 끝내고 기업의 정상 조업이 본격화됨에 따라 전력예비율이 이번 주에 6%까지 떨어질 걸로 내다봤다. 전력예비율은 전기의 추가 공급 여력을 보여 주는 지표다. 통상 산업부는 안정적 전력 공급을 위해 전력예비율을 15% 정도로 유지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산업부는 석탄화력발전기 출력 향상(49만㎾) 등을 통해 418만㎾의 가용자원을 비상시에 동원할 계획이다. 현재 정비 중인 월성 1호기와 당진 3호기 등도 이른 시일 내에 재가동하기로 했다.

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