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빠른 식사와 고혈압|성낙응<이화여대 의대학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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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별일도 아닌데 흥분하기 쉬운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의 식사버릇을 보면 대개 빠르다. 그리고 고혈압인 경우가 많다.
식사를 빨리하다보면 음식물에 대한 미각의 작용시간이 짧아진다. 그래서 맵고 짠·음식을 좋아한다. 예컨대 여름철 열무김치와 고추장으로 밥을 비벼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대개 식사시간이 짧다.
또 여름철 굴비나 대구포등을 한손에 들고 냉수에 밥을 말아 퍼넣다시피 먹는 사람은 조기나 대구가 짤수록 맛이 있다고 한다. 굴비나 대구포등은 보통식품에 비해 염도가 높아 입에 넣고 오랫동안 잘 씹어먹는다는 것은 짠맛이 강하여 견딜 수가 없다. 그러나 입을 통과하는 시간이 빠르면 빠를수록 짠맛이나 매운 맛이 강해야 미각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소금에 절인 대구포나 굴비를 즐기다보면 염분섭취과다가 습관화된다. 염분섭취과다는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본태성 고혈압과 연결이 된다. 식사시간이 빠른 사람군이 식사를 천천히 하는 사람군에 비해 고혈압환자가 많다는 조사보고는 이런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또 성미가 급한 사람이 식사를 천천히 하면서부터 성격이 누그러진다는 재미있는 보고도 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6·25당시 군훈련소에서는 식사시간이 1∼2분 정도였다. 그래서 성인남자들사이에 식사를 빨리하는 버릇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이와 비슷한 현상이 요즘 월급장이에서도 보인다. 그들의 식사시간, 특히 점심시간은 여유가 없다. 요즘의 월급장이들이 전쟁터와 흡사한 환경에 처해있는 탓인지도 모른다.
식사가 빠른 사람은 식사를 즐긴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즉 식사는 그저 필요하여 먹는데 지나지않는다. 그렇게되면 식사를 하는데 맛을 음미하며 만족을 느낄 여유가 없다.
그래서 언제나 불만이 있게 마련이다. 이런 경우 흥분하기 쉽고 흥분하면 혈압은 더욱 상승하고 언제나 불안상태에 있게되며 이렇게 되면 동맥경화증이 되기 쉽다. 그뿐 아니라 음식을 짜게 먹게되어 염분과잉섭취로 인한 고혈압까지 가중돼 건강을 해치게 된다.
결국 식사는 될수있는한 안정된 상태에서 천천히 먹고 식사를 즐기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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