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돌린 마르코스 재산 회수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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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워싱턴=장두성 특파원】제3세계의 독재자가 실각해서 망명길에 오를 때는 의례 그가 빼돌린 거액의 재산이 크게 말썽이 돼왔다. 79년에 망명길에 오른 이란의 「팔레비」왕과 니카라과의 「소모사」가 대표적 예다.
이 두 독재자는 엄청난 재산을 외국에 빼돌렸다는 혐의를 받았지만 후계정권이 하나도 회수하지 못하고 흐지부지 돼버렸다. 그래서 이 관계에 있어서는 아직 국제법규상 선례가 없는 형편이다.
그러나 최근 문제가 되고있는 「마르코스」의 경우는 특이하다. 그는 필리핀을 탈출하면서 22개의 궤짝에 1백 20만 달러에 해당하는 필리핀 화폐를 담아 나왔는데 이것이 미국 세관에 압류되어 있는 것이다.
과거의 예와는 달리 「마르코스」 경우는 이 물적 증거 때문에 현행범이 된 꼴이 되어있다. 백악관은 처음 「마르코스」의 짐이 미국 국내법에만 저촉되지 않는다면 문제삼지 않겠다고 발표했었다. 미국 법은 외국인이 입국할 때 1만달러 이상을 휴대할 경우 세관에 신고하도록 되어있다. 신고만 하면 문제가 없다.
그러나 「마르코스」가 20개의 궤짝에 돈과 보석과 금괴를 갖고 나왔으며 이의 수송을 맡은 미 공군이 필리핀 세관의 통관 절차를 밟지 않았다는 사실이 보도되자 난처해진 백악관은 이 재산 처리는 『미국과 필리핀 법 및 국제법에 따를 것』이라고 입장을 수정했다.
망명한 외국 국가원수의 재산권에 관한 국제법상의 규범이 없기 때문에 미국정부가 말한 국제법이란 소송의 국제화라는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미국 행정부의 이와 같은 입장을 미국 법으로 뒷받침하려는 움직임이 이미 의회에서 일고 있다. 일부 의원들은 「마르코스」가 위장회사를 통해 구입한 미국내 부동산의 실제 소유주를 확인하기 위해 「외국인 재산 공개법」을 입안중이며, 「솔라즈」 미 하원 아시아-태평양지역 소위 위원장은 외국정부가 불법적으로 미국에 유출된 자산을 회수하기 위해 미 연방법정에서 원고의 법적 지위를 가지고 설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을 마련중이다.
또 캘리포니아주 의회에서도 「마르코스」의 주내 부동산 소유현황을 세무당국이 조사하도록 허용하는 법안을 마련하고 있다.
「마르코스」의 미국 내 자산규모에 대해서 필리핀 정부를 대변하는 기본권 옹호협회 측은 1백억∼3백억 달러라고 주장하고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표면에 나타난 액수는 「마르코스」 일행이 갖고 나온 1백 20만 달러와 맨해턴에 있는 3억 5천만달러 상당의 부동산 등이다. 이밖에도 캘리포니아의 부동산과 바하마의 은행 및 위장회사에 상당한 액수가 잠겨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르코스」 소유 재산중 페소화의 국외반출을 금지하고 있는 필리핀 국내법을 명백히 위반한 1백 20만달러의 회수는 간단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필리핀 법에 따르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장회사를 통해 숨겨둔 부동산 및 기타 자산은 오랜 시간을 끌면서 소유권 확인·재산의 불법취득 확인 등 여러 단계의 소송을 거쳐야만 된다.
미국 정부가 이 문제에 중립을 선언했고 과거 「소모사」와 「팔레비」의 재산문제가 결국 흐지부지된 전례로 보아 「마르코스」의 재산도 그 일부를 「상징적」으로 반환하고 마는 수준에서 일단락 될 것 같다고 한 필리핀 소식통은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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