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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갈 티셔츠’ 불똥, 정의당 열흘째 탈당 행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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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요즘 정의당은 메갈당’, 이런 평가를 듣는 게 예전 통합진보당 사태 때보다 더 부끄럽습니다. 탈당하시는 분들 중 일부는 저처럼 부끄러워 나가시는 분들일 겁니다.”

티셔츠 입은 성우 교체한 넥슨
정의당, 비판 논평 냈다 역풍
“종북 논란 후 이런 사태는 처음”

31일 정의당 홈페이지 당원 게시판에 당원들이 남긴 탈당의 변(辯) 중 일부다. 지난달 21일터 시작된 정의당 탈당 게시글은 수백 건에 달하며 열흘째 계속되고 있다. 정의당이 때아닌 탈당 바람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소위 ‘메갈 티셔츠’ 논란에 휘말리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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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 김모씨가 트위터에 올린 ‘메갈 티셔츠’ 사진.

논란은 지난달 19일 게임업체 넥슨이 자사 온라인게임에 출연시킨 성우 김모씨를 다른 성우로 교체하면서 촉발됐다. 김씨가 ‘남혐’(남성 혐오) 사이트로 알려진 ‘메갈리아’의 판매용 티셔츠를 입고 사진을 찍어 올린 것이 화근이 됐다.

누리꾼들의 반발을 우려한 넥슨은 김씨와 상호 합의로 계약을 해지했지만 사회 각계가 이를 성토 또는 옹호하는 목소리를 내면서 메갈리아 찬반 논쟁으로 번졌다.

불똥이 정의당으로 튄 것은 하루만인 지난달 20일. 정의당 문화예술위원회가 ‘기업의 노동권 침해’라며 넥슨을 비판하는 논평을 내면서다. 이후 정의당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메갈리아를 옹호했다”고 성토하는 한편 메갈리아에 대한 당의 입장 표명을 촉구하는 당원들의 글이 줄을 잇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의당 측에서 별다른 반응이 없자 일부 당원이 탈당 러시로 ‘실력 행사’에 나섰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정의당은 논평을 낸 지 닷새 만인 지난달 25일 중앙당 상무집행위원회를 열어 해당 논평을 철회한 데 이어 29일 심상정 상임대표가 단합을 요청하는 호소문을 내놨다. 하지만 불길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탈당계를 제출한 일부 당원이 “당이 25일까지 기다려 달라더니 통장에서 당비를 인출해 갔다”고 항의하며 논란이 커졌다.

정의당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창민 정의당 대변인은 31일 “2008년 당을 두 동강 냈던 종북 논란 후 이런 사태는 처음인 것 같다”며 “실제로 많은 탈당계가 접수되고 있다”고 말했다. 당 안팎에서는 이번 사태가 진보정당을 표방하는 정의당의 정체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이현우 서강대 교수는 “계급정당과 이념정당의 토양이 척박한 한국에선 주로 대선후보나 당 대표를 두고 벌어지는 계파 싸움에서 당원들의 갈등이 촉발되지만 정의당은 진보라는 이념을 기반으로 하다 보니 가치 논란에 휘말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 관계자는 “‘메갈 티셔츠’ 사태가 군소 정당인 우리 당엔 쓰나미가 됐다”며 “지역 기반이 없는 우리에게 당원 이탈은 치명적”이라고 말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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