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ARF 성명 수정 시도하다 실패…"이용호 근처 앉기 싫다" 항의, 자리 통째로 바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을 강력하게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 의장성명을 수정하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한 것으로 확인됐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29일 “북한은 ARF 의장성명 발표 후에 의장국인 라오스 측에 강한 불만을 제기했는데, 라오스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28일 발표된 ARF 의장성명은 “장관들은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인 북한의 1월6일 핵실험, 2월7일 로켓 발사, 7월9일 탄도미사일 발사 등을 포함한 한반도의 현상황 전개에 우려(concern)를 공유했다”고 밝힌 바 있다.

북한은 라오스 외무성에 자신들의 주장도 성명에 포함시켜달라고 강하게 요구했다고 한다. 이에 라오스 측은 실제 28일 이른 아침 한국 등 일부 국가에 “외무성으로 들어와 문안 협의를 하자”고 연락을 취했다. 정부는 즉시 미국, 일본, 호주 등 우방국들과 연락을 취해 대책 논의에 나섰다. 각기 개별적으로도 문안 수정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라오스에 통보했다. 외교부 본부와 워싱턴의 국무부도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런데 점심때쯤 라오스 측에서 다시 “회의가 취소됐다”고 통보를 해왔다.

이를 전후로 라오스는 북 측과 최소 두 차례의 양자 실무협의를 통해 “의장국의 권위를 갖고 최종적으로 발표한 성명을 수정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알렸다고 한다. 라오스 역시 실제 문안을 수정하기 위해 일부 국가에게 연락을 한 것이 아니라, 북한 측에 여러 국가의 반대를 직접 보여주기 위해 회의 소집 등의 제스처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 전통적으로 우호관계를 맺고 있는 사이라, 북한의 요구를 그냥 묵살하긴 힘들었을 것이란 추측도 나온다.

라오스가 주최한 25일 갈라만찬에서도 북한 이용호 외무상의 ‘왕따’ 신세는 여실히 드러났다. 당시 만찬 직전에 장관들의 자리가 모두 바뀌는 소란이 벌어졌다. 27명의 외교장관이 참석하는 행사 시작 불과 1시간 30분 전에 좌석 배치를 바꾸는 일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 옆에 앉는 것으로 돼 있었는데, 갑자기 존 케리 미 국무장관 옆자리로 바뀌었다. 취재진이 현장 의전을 담당하는 직원에게 이유를 묻자 수차례 대답을 않다가 “알파벳 순서가 너무 가까워서”라고만 답했다.

알고 보니 이는 만찬장에서 이용호의 근처에 앉기 싫다고 강하게 요구한 외교장관이 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용호 부근 자리만 바꾸면 눈에 띄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모든 장관의 좌석 배치를 흔들어야 했던 것. 주최측인 라오스도 이때문에 진땀을 뺐다고 한다.


▶관련기사 영어 유창한 이용호도, 조용했던 이수용도 결국은 ‘왕따’



이용호는 ARF 외교장관회의가 폐막한 뒤에도 이틀을 더 머물렀다. 라오스 및 다른 아세안 국가 양자방문을 추진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를 접수하려는 나라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ARF 외교장관회를 통해 외무상으로서의 국제무대 데뷔전을 치른 이용호는 결국 빈손으로 28일 귀국길에 올랐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