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부패 뿌리 뽑자는데 왜 국회의원만 봐줘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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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으로 9월 28일부터 시행될 ‘김영란법’은 공직자와 정치인의 부정부패를 뿌리 뽑자는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법에 따르면 공직자와 배우자는 한번에 100만원, 1년에 300만원 넘는 금품(향응)을 받으면 무조건 형사처벌을 받는다. 직무 관련성이 없어도 처벌하고 연좌제적 성격이 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지만 워낙 뿌리 깊은 공직사회 부패를 발본색원하려면 다소 무리한 법 시행에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문제는 금품·향응 수수, 부정 청탁의 소지가 가장 큰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직자들에게 면죄부를 줬다는 점이다. 당초 정부 초안엔 예외 규정이 없었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신설됐다. 또 국회의원이나 고위 공직자의 자녀·친척 취업 청탁을 막기 위한 ‘이해충돌 방지 조항’도 빠져 있다. 국회의원들이 정작 자신들의 청탁과 민원엔 눈을 감아 허수아비 법안을 만든 것이다. 지난해 시행에 들어간 독일 반부패법이 국회의원의 뇌물 수수 범위를 대폭 확대한 것과 정반대다.

공직 부패를 뿌리 뽑자는 법의 취지에 반대할 국민은 없다. 특히 한국의 부패인식지수는 170여 개국 중 10년째 40위 안팎에 머물러 있다. 많은 국민이 김영란법에 다소 무리한 측면이 있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우리 사회의 고질적 부패를 뿌리 뽑기 위한 필요성에 고개를 끄덕이는 건 이 때문이다. 하지만 공인 중의 공인인 국회의원의 청탁과 민원에 예외를 인정한다면 알맹이가 쑥 빠진 부실 입법이다. 이런 누더기 법안으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공직 부패를 어떻게 청소할 수 있겠는가.

김영란법이 반부패법의 효과를 거두려면 시행 전 당초 취지대로 법을 개정해야 한다. 국회의원 등의 민원 전달을 부정 청탁의 예외로 둔 조항을 삭제하고 국회의원·고위 공직자의 가족 취업 청탁을 막기 위한 이해충돌 방지 조항을 되살려야 한다. 그게 글로벌 기준이다. 겪고 나서 개정하겠다는 건 무책임하다. 국민에게 떳떳한 김영란법을 시행 전에 내놓는 게 20대 국회의 첫 임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