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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없는 유통업계 "안 세우는 게 아니라 못 세운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대책이요? 안 세우는 게 아니라 못 세우는 거죠.”

김영란법 합헌 결정은 예상대로 였고, 유통업계와 음식업계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9월 28일 법 시행은 이제 코 앞으로 닥친 현실이 됐다. 공직자ㆍ교직원ㆍ언론인이 받을 수 있는 선물(5만원)과 먹을 수 있는 식사(3만원) 가격까지 통제하는 법안에 업계는 전전긍긍하고 있다. 대책을 세우려 해도 뾰족한 수가 없기 때문이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롯데와 현대백화점은 명절 특수에 대비, 5만원 이하의 선물세트 물량을 20~30% 가량 늘렸다. 신세계 백화점은 5만원 미만 세트를 30여종 늘렸다. 법 시행 전이지만 미리 대비한다는 차원이다. 하지만 내부에서조차 ‘언발에 오줌누기’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백화점 선물세트의 주력 상품군은 20~30만원대인데 5만원 이하로 상품을 다양화하려 해도 마땅한 게 없다”면서 사실상 대책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대책회의라기 보다는 몇차례 내부에서 논의가 있었지만 딱히 나온 해결책은 없다”면서 “단일한 도매상을 통해 공동구매 형태로 단가를 내리는 방안을 협력사들과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해관계가 복잡해서 결론내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백화점이 직격탄을 맞는 것과 반대로 엉뚱한 수혜 기업이 생길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다. 익명을 원한 백화점 관계자는 “5만원 이하 선물세트라고 하면 참치나 식재료, 비누, 샴푸 같은 생필품 정도일 것”이라면서 “김영란법의 불똥이 튀어 어려워지는 백화점과는 달리 생필품을 만드는 대기업은 상대적으로 수혜를 입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호텔업계는 규모에 따라 미묘한 시각차가 있었다. 한 특급호텔 관계자는 “3만원 식사는 도저히 맞출 수 없는 수준이라 따로 대책을 마련할 이유도 없고, 크게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면서 “3~5만원 정도의 메뉴가 있는 식당을 운영하는 중간 규모 호텔이 타격을 입을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강남의 한 호텔 관계자는 “4만원대 식사를 3만원 미만으로 조정하자는 이야기가 회의에서 몇번 나오긴 했다"면서도 "대부분 법 시행 후 추이를 지켜보고 바꿔도 늦지 않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전국한우협회는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전국 식당 매출이 해마다 최소 6400억원이 줄어들 것으로 추정했다. 2014년 기준 한우의 연간 음식적 소비액 1조6000억원의 40%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추정의 근거는 이렇다. 한국외식업중앙회가 지난 5월 회원사를 상대로 조사한 결과 1인당 평균 한우 식단가는 7만5000원. 식사비가 3만원으로 제한되면 단순 계산으로도 4만5000원(60%)이 깎인다. 가격인하 등 변수를 고려해 40~50% 매출이 줄어들 것이란 추정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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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원 한우협회 홍보국장은 “40%라는 가정도 사실은 매우 보수적으로 잡은 것”이라면서 “50% 이상 매출이 빠진다면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우를 취급하던 식당은 문을 닫아야 할 판이고 4분의1 가격에 불과한 수입육을 파는 식당만 살아남게 되는 구조가 된다”면서 “대책을 세울 여지가 있어야 대책을 세우는데, 도저히 안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화훼시장은 암울한 분위기가 가득하다. 난 도매 매장을 운영 중인 박모(50)씨는 “악을 쓰고 시위를 해봤자 아무것도 바뀌는 게 없다”면서 “대책이 있다면 그럴 이유가 있었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20년 넘게 운영해온 매장을 팔아치울 생각이라고 했다.

장주영 기자 jang.joo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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