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처럼 번진 "중소기업 육성"-이장규 경제부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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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 내에 중소기업에 대한 관심이 무슨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너도나도 「중소기업」
이다. 부총리도, 상공부장관도, 재무부장관도 말끝마다 중소기업 육성에 관한 역설이다.
금융계도 마찬가지다. 시중은행들은 며칠 전부터 저마다 「중소기업부」를 신설하기 시작했고, 전담 금융기관인 중소기업은행의 경우 실무자도 모르는 사이에 자금지원규모가 1천5백억 원이 추가로 책정되는 촌극까지 빚었다.
신임 한국은행총재는 취임인 사차 상공부장관실을 방문해 적극적인 자금지원을 약속하기까지 했다. 전례없는 일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농촌지역에 공장을 차리는 중소기업한테는 정부 호주머니에서 2백억 원 (자금관리특별회계)을 빌려주기로 했었는데 상공부 측은 정부가 받는 금리를 6%로 하자고 주장했고, 돈줄을 쥐고 있는 재무부는 8%이하로는 절대 안 된다고 맞서왔다. 그랬던 것이 어느 날 갑자기 재무장관 결재과정에서 5·5%로 결정이 나 버렸다. 관계실무자들조차 영문을 모를 일이었다. 6%도 안 된다고 펄펄 뛰더니…
어쨌든 연초부터 중소기업육성문제를 놓고 사방에서 야단들이다. 대단한 열기다. 어떤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중소기업육성을 위하는 것이라면 가능한 모든 정책수단을 총 동원 하겠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심상찮다. 모두들 앞뒤 안 가리고 하도 무서운 기세로 몰아치고 있으니 말이다. 꼭 무슨 일을 낼 것만 같은 꺼림칙한 분위기다.
『회의석상에서 마음놓고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어요. 행여나 중소기업육성정책에 문제점을 지적하기라도 하면 당장에 대기업 앞잡이로 성토를 당하게 생겼으니 말입니다』『이러다간 배가 산으로 올라가게 생겼어요. 너무들 태도를 표변하니 감을 잡을 수가 없어요』
몇몇 고위당국자의 솔직한 고백이다. 요즈음의 경직된 분위기를 대변해주는 말들이다.
정책결정에 있어 논리를 따지기는 뒷전이고 모두가 대세에 휩싸여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새마을 공장을 무더기로 지을때도, 농촌주택개량사업을 벌일 때도, 중화학투자를 몰아붙일 때도, 해외건설이나 해운산업을 정신없이 벌여 나갔을 때의 분위기도 이랬었다. 균형 감각은 어디 가고 모두 편향성뿐이다. 「물 흐르는 듯한 경제운용」은 어디로 가고 터져 나온 봇물의 위세만이 등등한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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