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육성이 역조개선 지르믹ㄹ|정부의 지원정책과 업계의 사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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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연초부터 부품산업 쪽에서의 신풍이 예고되고 있다. 업종자체의 밝은 전망 뿐 아니라 정부차원에서도 부품산업 육성을 위한 총력전을 선언하고 나섰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부품산업이 우리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뉴 비즈니스」인 동시에 부품의 수입대체 없이는 국제수지의 개선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형편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부품 산업육성은 성장과 국제수지 개선에 결정적인 보탬이 될 수 있는 것이다.
70년대 이후 엄청난 투자를 해가며 추진해온 중공업화는 사실 말이 중공업이지 부품산업이 제 궤도에 오르지 못해 껍데기뿐인 외형성장에 불과했었다. 알맹이에 해당하는 부품산업이 제대로 되어야 진짜 중공업화를 통한 경제성장을 계속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동시에 국제수지면 에서도 부품은 그 동안 원유 도입 다음으로 적자를 누적시켜 온 주범이었다. 자동차 부품을 비롯해 선박부품·전자부품·일반기계부품 등 매년 평균 18억달러 수준의 입초를 계속해 왔다.
부품류의 국산대체가 어느 정도 이뤄진다면 국제수지흑자전환은 당장에라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부품류의 연간 수출액은 25억달러, 수입은 43억달러 수준이다. 90년대 초까지 1백억 달러 수준으로까지 부품수출을 늘리겠다는 책사진이다. 만약 수출을 이렇게 늘릴 수 만 있다면 수입대체는 앉아서 성취하는 셈이 된다. 국산 부품의 품질이 그 만큼 좋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정부가 밀어붙인다고 해도 힘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부품산업이란 근본적으로 조립이나 가공산업과는 차원이 다르다. 부품산업이 이익이 많이 남고 좋은지 몰라서 그 동안 외면한 것이 아니라 그럴 능력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부품산업을 본격적으로 해보겠다는 것은 산업의 구조를 달리해서 한 차원 점프를 하겠다는 뜻이다.
외국에서 사다 쓰던 수입부품 대신 국산부품으로 진짜 국산 완제품을 만들뿐만 아니라 부품자체의 수출 확대로 성장의 활로를 찾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산업에 비해 현실적인 여건이나 우리의 기술 능력 등은 아직도 멀었다. 전자제품을 연간 60억달러씩 수출하고 있지만 부품의 4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다.
일반 기계류에 있어서는 최근 90% 이상 수준으로까지 국산화율을 높였으나 첨단 기술제품 쪽으로 갈수록 급격히 떨어진다. 일본에 비해 부품의 60%가량이 값도 비싸고 품질도 떨어진다는게 최근의 산업연구원 분석이다. 기술수준이 낮고 생산시설이 뒤떨어 졌을 뿐만 아니라 업체도 영세하다는 이야기다.
전자부품 생산 업체 수만 해도 일본이 3천1백60개, 대만이 1천4백개인데 비해 우리는 6백개 수준에도 못 미치는 실정이다.
도저히 우리 기술로는 엄두를 낼 수 없는 경우야 어쩔 수 없겠지만 가까스로 만들어낸다고 해도 조악한 품질이나 비싼 가격·선입견 등의 문제가 산적해 있다.
VTR의 부품들은 국산화가 가능하다 해도 워낙 모델이 빨리 바꿔는 바람에 낭패고, 특수 베어링은 정밀도가 떨어져 고급기계용으로는 쓸모가 없고, 선박부품은 아무리 성능이 우수해도 선박 발주자가 신용을 하지 않으니 답답한 형편이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더더욱 없다. 부품류의 완전 수입개방이 코앞에 다가와 있는 만큼 자칫 잘못하면 수출은 커녕 국내 부품시장까지 완전히 수입 부품에 의해 잠식 당 할 판이다.
부품 산업육성에서 우리가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강점은 역시 싸고 우수한 노동력이다. 종래 섬유나 조선공업보다는 여러 단계 높은 기능이 요구된다고 해도 그 정도는 충분히 소화할 수 있을 뿐더러 경쟁 상대국에 비해 임금이 현저하게 싸다.
특히 자동차 부품류 쪽에서 이 같은 기대가 크다. 미국의 3대 자동차 메이커인 GM·포드·크라이슬러 모두가 한국과의 부품생산 합작을 이미 시작했거나 추진중이다.
세계적인 부품전문 메이커인 미 TRW 관계자는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한국에 부품을 팔러 온 것이 아니라 부품을 만들어 줄 인력을 사러왔다. 근로자의 교육수준·임금수준·성실성 등을 종합해 볼 때 한국을 따를 데가 없다』며 한국기업과의 합작추진 이유를 밝혔다.
브라질의 자동차 산업처럼 선진기술과의 합작에 성공 할 경우 완성 차 못지 않은 금액의 부품 수출도 기대할 수 있는 일이다.
전자부품의 수출은 아직도 조립 반도체가 실적의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컬러TV의 현지법인용 부품수출이 최근 들어 점차 활기를 띠고 있다.
엔화 강세현상도 부품 국산화를 재촉하게 하는 바람직한 외압이 될 수 있다. 주로 일본시장에서 사오던 부품 값이 워낙 뛰어 오르는 바람에 수입대체의 필요성이나 그에 따른 이득이 종래 보다 훨씬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부품의 수입대체가 가능 할 경우 국제수지개선 효과면에서 수출 증대에 비할 바가 아니다. 1백만 달러 수출을 늘리려면 그 금액 절반 가까운 만큼의 수입 원자재를 사다 써야 하는데 비해 1백만 달러 어치의 수입대체를 이룩할 경우 바로 그 자체가 국제수지개선에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정부는 필요성이나 여건 면에서 부품공업을 본격적으로 서둘러야 할 때라고 판단하고 금년 중에 가능한 모든 방법을 강구 할 작정이다. 사실 그 동안 말로만 강조해왔지 내 놓을 만한 지원책이 뒤따르지 못했다.
수출증대보다 수입 대체가 더 중요하다 면서도 수출금리는 10%의 우대 금리를 적용해 온 반면 국산화를 위한 국산기계 구입자금의 금리는 최고금리인 11·5%를 매기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제도적인 모순부터 바로잡아 나가야할 것이다. <이장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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