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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기업 1121개 매출 70조원 돌파, 벤처 새 역사 ‘스타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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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9호 14면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1일 오후 경기도 성남 판교테크노밸리의 스타트업 중 한 곳인 원투씨엠을 찾아 한정균 대표(왼쪽)에게 이 회사의 제품인 스마트 스탬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은 21일 판교를 찾아 주요 스타트업 창업가들과 대화를 나눴다. 왼쪽부터 네오펙트 반호영, 뷰노코리아 이예하, 마인즈랩 유태준, 스칸디에듀 김서영, 모션블루 홍제훈 대표.

경기도 성남 판교테크노밸리 북쪽 판교실리콘파크 5층에 자리 잡은 벤처기업 원투씨엠은 이 지역 스타트업(창업 초기기업)들에 부러움의 대상이다. 창업(2013년 3월)한 지 만 3년여밖에 안 됐지만 첫해부터 흑자를 기록한 데다 올해는 연말까지 100억원의 매출이 예상되는 등 급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투씨엠은 스마트폰 스탬프(도장)를 이용한 모바일 쿠폰·결제서비스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다. 커피숍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받는 종이쿠폰의 도장을 소비자의 스마트폰과 매장의 스탬프로 바꾼 형식이다. 스마트폰에 깔린 커피숍 앱에 스탬프를 갖다 대기만 하면 실제 도장처럼 구입 기록이 남게 된다. 매장에서 별도의 시스템 없이도 스마트 스탬프만 비치하면 돼 영세업자도 손쉽게 이용할 수 있다. 쿠폰뿐 아니다. 결제 대행사를 끼고 스탬프를 이용한 결제서비스까지 가능하다.


현재 일본 편의점 훼미리마트에서 스탬프 서비스를 시작했고, 중국에서는 최대 모바일 결제 플랫폼 ‘알리페이’ 등과 손잡고 해외 진출을 진행하고 있다.


원투씨엠은 판교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 2기 기업이다. 이 회사 한정균(49) 대표는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하고 삼성전자에서 통신을, 휴렛팩커드에서 금융 업무를 하면서 이른바 핀테크(금융+정보기술 융합) 창업의 노하우를 쌓았다. 한 대표는 “혁신센터의 지원으로 중국 상하이 전시회, 스페인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런던 데모데이 등에 참가해 작은 기업으로서는 만나기조차 어려웠던 글로벌 기업과 사업 협력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센터 지원으로 글로벌 기업과 협력 기회”판교 아래 죽전 단국대 캠퍼스 내에 위치한 네오펙트는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 재활 의료기기와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창업 7년차 스타트업이다. 원투씨엠처럼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 2기 기업이지만 임원 중 한 명의 인연이 있어 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단국대에 둥지를 틀었다. 대표 제품은 스마트 글러브다. 손 모양의 실리콘 장갑을 끼고 화면에서 지시하는 동작을 게임처럼 따라 하면 손 재활과 인지 기능 회복에 도움이 된다. 국립재활원과 서울대병원·분당제생병원, 단국대병원 등에서 제품을 활용 중이다. 매출은 아직 연 10억원(2015년)에 불과하지만 기술력을 인정받아 지난해 국내외에서 46억원을 투자받고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현지법인도 설립했다.


네오펙트의 반호영(39) 대표는 KAIST 항공우주공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전자에서 4년간 근무하다 미국에서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하고 귀국해 창업에 나섰다. 그는 “삼성전자 기술기획 부서에서 근무하면서 창업을 생각하게 됐다”며 “혁신센터에서 마케팅 비용과 출장비 등 자금 지원뿐 아니라 해외 전시, 멘토링 등 다양한 지원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판교테크노밸리를 중심으로 한 스타트업·벤처 생태계가 서서히 모양을 갖춰가고 있다.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국내외에서 투자 유치에 성공하고 매출과 이익이 급상승하는 스타트업들이 생겨났다. 또 이들의 본보기가 될 강소 중견기업과 지원기관·투자자 등이 모여들고 있다. 판교테크노밸리에는 지난해 말 현재 1019개의 중소기업과 54개의 중견기업을 포함해 총 1121개의 기업이 입주해 있다. 이들 기업이 만들어내는 연간 매출액은 70조원에 이른다.

설계소프트웨어 세계 1위의 강소기업 마이다스아이티의 이형우 대표.

판교테크노밸리 서쪽에 자체 건물을 보유하고 있는 마이다스아이티는 국내 벤처기업 성장·발전의 본보기로 평가받는 대표적 ‘히든 챔피언’(강소기업)이다. 포스코건설에서 20명 규모의 사내 벤처로 출발, 2000년 창업한 ‘청년기업’이다. 하지만 지난해 매출 707억원, 직원 600명의 중견기업으로 급성장했다. 전체 매출의 40%를 해외에서 올리는 수출형 기업이기도 하다. 마이다스아이티의 설계 소프트웨어(SW)는 국내 시장의 95%, 세계 시장의 38%를 석권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두바이의 부르즈 칼리파와 베이징의 올림픽 메인스타디움, 광저우 트윈타워, 러시아의 러스키 아일랜드 브리지, 이탈리아 밀라노 대성당 복원 프로젝트 등에 마이다스아이티의 설계 SW가 사용됐다. 2019년 완공을 목표로 사우디아라비아 지다에 건설 중인 높이 1000m(200층)의 킹덤타워 역시 마이다스아이티의 설계 SW다. 기업문화도 독특하다. 학력 등 소위 ‘스펙’을 전혀 보지 않는 능력 위주 채용이다. 지난해 새로 뽑은 직원 48명 중 대덕소프트웨어마이스터고 등 특성화고교 졸업자가 6명이나 포함됐다. 승진 경쟁도 없다. 때가 되면 입사 순서에 따라 직원을 넘어 임원까지 승진할 수 있다. 그 덕분에 입사 경쟁률이 500대 1에 달하는 청년 구직자들의 ‘꿈의 직장’으로 떠올랐다.


박근혜 대통령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의혹 논란 속에도 지난 21일 판교테크노밸리를 찾았다. 그만큼 판교는 눈부신 성장을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원투씨엠과 세계 1위의 설계 SW 기업 마이다스아이티를 잇따라 방문하고 네오펙트·마인즈랩·스칸디에듀·모션블루·뷰노코리아 등 정보통신기술(ICT) 기반의 스타트업 대표들과 대화도 나눴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해외시장 진출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도전하는 여러분이 우리 경제의 미래이자 새로운 동력이라 생각한다”며 “창조경제 생태계 구축 노력을 더욱 강화해 창업가를 지속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판교테크노밸리의 또 다른 엔진은 올 3월 문을 연 스타트업 캠퍼스다. 지상 8층의 건물 2개 동과 지상 5층 건물 1개 동 등 총 3개 동 5만4075㎡(약 1만6400평) 규모의 스타트업 캠퍼스에는 K-ICT 본투글로벌센터 소속 46개사 등 총 80개 스타트업이 입주해 있다. 이곳에는 스타트업을 최대 200개사까지 수용할 수 있다. 이들을 지원할 기관도 입주를 마쳤다. IoT 혁신센터와 빅데이터센터·클라우드센터·창업멘토링센터·디바이스랩·SW융합클러스터·국가수리과학연구소 산업수학혁신센터 등이 그것이다.


40곳 뽑는 프로그램에 세계 2439개사 지원스타트업 캠퍼스에는 외국 스타트업도 들어온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주관하는 K스타트업 그랜드 챌린지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다음달 중순까지 총 40개 해외 스타트업을 뽑는 이 프로그램에는 최근 세계 124개국 2439개 스타트업이 지원했다. 이들 40개 스타트업은 3개월 뒤 데모데이를 거쳐 다시 20개 팀으로 추려진다. 이들은 향후 6개월 동안 다시 한국 정부의 지원 속에 스타트업 캠퍼스에서 머물 수 있다. 한국과 아시아 시장에 진출하려고 하는 세계 유망 스타트업을 발굴해 한국 내 창업 생태계에 안착하도록 지원해 준다는 취지다. 올가을이 되면 스타트업 캠퍼스에 다양한 국가·인종의 스타트업 창업가들이 북적거릴 전망이다.


스타트업 캠퍼스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종갑 K-ICT본투글로벌센터장은 “영국 런던의 테크시티나 미 실리콘밸리에는 세계 여러 국가에서 온 스타트업이 뒤섞여 경쟁하고 있다”며 “다양한 나라 사람들이 한데 모여 창업 생태계를 이룬 곳이 글로벌 시장에 접근하기가 훨씬 유리하다”고 말했다.


판교테크노밸리는 이제 북쪽으로 확장 중이다. 북쪽 한국도로공사 자리는 현재 기존 도로공사 건물을 해체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정부는 경북 김천으로 이전한 도로공사의 부지와 경부고속도로 너머에 있는 그린벨트 용지 등을 활용해 총 43만㎡(약 13만 평) 규모의 제2 테크노밸리를 세우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이곳에는 기존 대기업보다는 기술주도형 스타트업·벤처기업과 시너지 창출이 가능한 혁신형 기업을 유치한다. 기존 판교테크노밸리에는 중소·중견기업뿐 아니라 SK플래닛·테크윈·삼성중공업·포스코ICT 등 기존 대기업 그룹 계열사가 대거 입주해 포화상태를 이루고 있는 점을 염두에 둔 것이다.


정부 계획에 따르면 제2밸리는 ▶창조 공간(기업 지원 허브) ▶성장 공간(기업성장 지원센터) ▶벤처 공간(벤처캠퍼스) ▶혁신기업 공간(혁신타운) ▶글로벌 공간(글로벌비즈센터) ▶소통교류 공간(전시·상업·문화)으로 나눠진다.


우선 내년 8월 기업지원 허브가 될 창조 공간을 준공하고 200여 개의 예비 창업기업이 입주할 수 있는 임대 공간과 창업지원시설 등을 갖출 계획이다. 이곳에는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와 K글로벌 프로젝트 등에서 발굴된 창업기업이 최대 3년간 입주할 수 있게 된다. 이후 들어설 성장 공간(기업성장 지원센터)에는 창업 뒤 3~4년이 지난 성장 단계의 기업 300개사가 시세보다 20~30%가량 싸게 입주할 수 있는 업무 공간과 각종 인증·지원기관, 사원용 기숙사 등이 들어선다.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신규 부지에는 창업기업 300개, 성장기업 300개, 혁신기업 150개 등 총 750개 기업이 추가로 입주할 수 있다”며 “창조경제밸리 조성이 완료되면 판교는 1600여 개의 첨단기업이 집적되고 10만 명이 근무하는 세계적인 첨단 클러스터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판교테크노밸리가 제대로 된 창업 생태계를 형성해 창조경제의 대표주자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도 적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판교테크노밸리의 한 관계자는 “여러 부처, 기관에서 실적 경쟁하듯 각종 관련 센터를 세우다 보니 정작 창업기업을 위한 공간이 얼마 되지 않은데, 역할이 중복된 지원기관들이 넘쳐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프라도 중요하지만 손쉽게 창업하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창업 문화를 위한 각종 규제 개혁도 조속히 시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준호 기자, 남건우·이우연 인턴기자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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